▲ 황 인 찬 목사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가정에 임한 복(福)을 노래한 시편 128편을 “그리스도인의 결혼축가”라고 말한바가 있다. 그토록 복되고 아름다워야 할 오늘의 가정들이 거의 파선위기의 정점에 있다고 말해도 문제제기할 사람이 많지 않을 듯하다.

이 시대와 이 사회가 성한대가 없이 찢기고, 파국으로 치달으며 이렇듯 고통의 소리로 가득한 그 뿌리는 가정의 붕괴가 그 원인이라고 진단하면서 이 시대의 모든 사회의 악은 가정의 파탄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사회학자가 있다.

사회학자 매슬로우(A.H Maslow, 1908-1970)는 이 시대를 진단하면서 현대사회를 ‘소외당한 인간을 양산하는 온상’이라고 지적했는데 옳은 말로 여긴다. 가정이 무너지면 세상으로부터 외톨이가 되고, 정신적으로 방랑자가 되어 사회의 악의 언저리에 얹히게 되고 만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무슨 짐승이 제일 무서운가?”하고 물었더니 임팔라(impala)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임팔라는 집단생활을 하는 사슴과(科)의 약한 동물인데 그 무리에서 혼자 외톨이가 되면 어떤 동물보다 무서운 사슴이 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사회도 마찬가지로 소외당하여 외톨이가 되면 이 임팔라처럼 무서운 사람이 되고,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두려운 사람이 되고는 한다.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함께 거주한 동료를 망치로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토막 내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안산 대부도 토막 살인범 조성호씨나 강남역 부근의 노래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묻지 마’ 살해한 피의자 등이 한 결 같이 그 원인의 뿌리를 가정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도 가정 붕괴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오늘의 이 현실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직자로서 이 사회에 건전한 가정을 재건하는 사명과 의무를 되새겨야 할 것은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원리를 찾는 일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복의 원천이다(시112:1-2, 115:13-14).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신 자라는 말과 같은 의미의 말이기도 하기에 말씀을 잃어버린 시대에 말씀을 회복하는 일로 가정 재건하는 일을 시작함이 순서적으로 옳다.

그리고 원리를 실천할 내용을 찾는 것이다.

시128:1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다.”고 하신다. 이 말씀은 그 원리의 삶에 적용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 원리는 엡 5:21에서 밝혀주듯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것이다.
오늘은 권위부정의 시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가정에는 거부할 수 없는 권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신가. 온 가족이 예수님의 권위 앞에 복종하므로 피차 사랑하며, 섬기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회복해야 한다.

가정의 붕괴로 불안해진 이 사회를 구제할 길은 성경적 원리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범이 되는 것이다. 길거리에 버려진 영혼들에 대하여 신자가 책임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경외하며 피차 복종하여 인격이 변화 받고, 날마다 거듭나 새 사람이 되도록, 피상적인 구호를 넘는 신앙적 책임을 다 해야 한다.

복음만이 붕괴된 가정, 소외당한 인간과 이 시대를 치료하실 수 있음을 믿는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롬1:16) 복음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No Option To The Gospel)

어리석어 보이며 근본주의자의 맹목적인 아집 같이 혹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나 이 땅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의 해결점은 복음에 있다.

위기는 기회다. 그것이 정치적이던, 가정의 문제이던, 교회의 세속화로 인한 위기이던 마찬가지이다. 위기 속에 사람들은 영적빈곤을 느끼게 된다. 이런 영적 빈곤함은 오히려 복음이 회복의 대안임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런 위기가 주는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으로부터 그 소망을 찾으려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일 그 이유가 복음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복음을 전달해야 할 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비윤리적이고, 비상식적으로 일탈 된 모습들 때문이거나 그 복음을 증거해야 할 사명자들의 세속화로 인한 불신앙과 복음의 사유화나 왜곡 때문이라면, 그 해답을 찾을 길이 참으로 망막하다.

교회가 무조건 회개하여 복음을 회복하는 길 밖에 회복의 다른 길이 없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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