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神)의 발성법(發聲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絃)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 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 문 현 미 시인
시의 첫 줄은 신이 준다고 했던가. 그만큼 시를 쓰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시상이 떠 오르는 처음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들어야 시를 써 나갈 수 있다. 일단 쓰고 난 후 끝없는 퇴고의 과정이 뒤따른다. 당송팔대문장가 중 한 명인 구양수는 글쓰기의 기초인 3多(多讀, 多作, 多商量)를 설파하였다. 그는 시를 써서 벽에 붙여 두고 드나들 때마다 고쳤다고 한다. 어떤 시는 얼마나 고쳤던지 초고 때의 한 글자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수탉의 힘찬 울음 소리와 함께 한 해가 시작되었다. 출발이 좋아야 결과도 좋은 법이다. 달리기도 스타트가 중요하기에 선수들은 초긴장상태에서 준비 자세를 취한다. 한 해를 잘 보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맹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해돋이를 보러 간다. 그만큼 처음이 소중하다. 첫 만남, 첫 사랑, 첫 눈, 첫 일출, 등등. 그래서 1년 12개월 중 1월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 크다.

시인은 1월의 의미와 가치를 염두에 두고 시상을 전개시킨다. 1월의 색을 흰색에 비유하여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의 캔버스’라고 표현한다. 산도, 강도 흰 색이고 더욱이 영혼의 이마도 희다고 한다. 1월은 처음 시작되는 달이기 때문에 어떤 색도 칠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근원의 색, 흰색을 선택한 것이다.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 아닌가. 원래 흰색은 순수, 순결, 진실을 의미한다, 천사의 옷도 흰색이고 신부의 웨딩드레스도 흰색이다. 흰색은 신성한 출발, 선한 의지, 맑고 깨끗한 영혼 등을 지칭하기도 한다. 시인은 흰색을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시작과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한다.

2연에서 1월을 음악에 비유한 시인만의 개성이 돋보인다. 특히 ‘속삭이는 저음’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마치 곡이 연주될 때 피아니시모로 느리게 여는 음이 바로 1월이고 게다가 ‘아직 트이지 않은 신의 발성법’이라고 표현함으로써 1월이 미지의 가능성을 함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나아가 1월을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에 비유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해가 떴으니 어서 일어나라고, 일어나서 희망찬 걸음을 옮기라고 한다. 마지막연에서 1월이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이라는 표현은 멋진 역설이다. 자칫 느슨하게 흐를 수 있는 서정의 분위기를 미적 긴장의 완결로 마무리 짓는다.

새해 첫 달이다. 모든 것이 열려 있다. 아직 마음을 다잡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면 시에서처럼 영혼의 캔버스에 눈부신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기를. ‘어린 양들아, 어서 일어나서 믿고 기도하며 잠잠히 길을 가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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