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동 규 목사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다. 생명은 그 어느 것보다도 소중하고 귀하다. 성서는 “생명은 천하보다도 귀중하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의 몸에 털끝만큼의 상처를 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만큼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 세계의 그 어느 피조물보다도 소중하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관리하도록 했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역사의 시작이었다. 때문에 역사의 주체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의 목숨이 파리 목숨과 같이 ‘죽임’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죽임’을 당하는 자는 죽이는 자의 죄악이며, 자살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오늘 세계는 사람의 지배욕과 소유욕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에서만 하루에 4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왜 이들은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일까(?)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것은 분명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잃어버린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창조신앙은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는 신앙이며, 생명은 그 어느 것보다도 소중한 생명의 신앙이다. 억눌리고 짓밟히고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약소민족의 신앙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신앙이다.

힘없는 백성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죽임을 당하는 자, 짓밟히는 자, 약소국가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역사를 시작한 분이라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계속해서 죽임을 당하고, 또 자신이 발을 붙이고 살던 나라에서 쫓겨나 유리방황하고 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웃나라와의 전쟁과 내전을 피해 고향을 버리고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지중해를 건너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피조물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서에 나타난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일깨워주는 창조신앙을 망각한 결과일 것이다. 1년에 우리나라에서만 1만3천여명, 북한은 1년에 1만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고 한다.

생명은 ‘살라’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살라’는 명령을 받았다. 어떤 처지에 있던지 온 힘을 다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아름답고, 창조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무게의 중심을 자신에게 두면서,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닌지 싶다.

자살하는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절박한 이유가 있겠지만, 자살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자살을 선택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죄, 죽음, 증오, 수치에 빠져 있다.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무게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라고 한다. 그리고 이웃에게 두라고 한다. 참된 자유와 참된 생명은 하나님에게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죽음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성서는 내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한다. 나의 생명도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재산과 지위도 내 것이기 전에 하나님의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을 내 마음대로 못한다. 만약 내 마음대로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예장 개혁선교 총무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