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연일 북한의 미사일바사, 핵실험 등 전쟁준비에 광분한 북한의 철권정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독재자 한사람을 위해 국민 전체가 희생하는 나라이다. 이런 상황에 있는 북한과의 대화단절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북한의 많은 주민들이 자유를 찾아 그리운 고향을 버리고 보다 나은 삶을 중국 땅에서 유리방황하며, 자유의 땅을 밟기 위해 고난도 마다하지를 않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우리는 이들을 ‘자유이주민’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맙시다”(갈라디아서 5장 1절)

성서는 자유에 관한 책이다. 구양성서는 자유를 찾아 헤매는 유랑민, 하비루에 관한 이야기이다. 토인비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갈대아 문명사회가 경직되어서 자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고 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이 자유가 없는 거대한 국가체제를 탈출했다는 이야기다.

출애굽사건은 자유가 없는 고대 이집트 왕국의 파라오 밑에서 신음하던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 정의롭고,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몸부림 쳤다. 이것이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이다. 이들도 가나안에 자신들의 왕국을 세웠다. 이들의 왕국도 고대 이집트 왕국과 다르지 않았다. 이때 예언자들이 나와 왕과 귀족들의 억압과 수탈을 비판했다. 결국 이들 왕국도 앗시리아와 바벨론에게 망하고 말았다.

나라를 잃고 바벨론 제국의 포로가 되었다가 5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해방의 기쁨, 제2이사야(이사야 40장-55장)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런 기쁨도 잠시, 이웃 강대국(마케도니아 왕국, 시리아제국, 로마제국)들의 억압적인 지배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다. 1천여동안 자유를 잃은 이스라엘 백성은 더 이상 인간들의 통치에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했다. 하나님만이 참된 자유의 나라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나라를 갈망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언했다.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복음은 간난한자, 갇힌 자, 눌린 자, 소외된 자들을 해방하는 복음이었다. 예수님의 사명은 누가복음 4장 18절 이하에 잘 나타나 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능하였느니라”

예수는 자신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 먼 사람에게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에게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했다. 주님의 은총의 해는 50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온다.

주님의 은총의 해인 희년에는 빼앗긴 땅을 다시 찾고, 종이 되었던 사람들은 종의 신분에서 해방된다. 이처럼 가난하고 억눌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바울 역시 권위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율법적 사고를 깨뜨리고 복음의 자유, 영적자유를 지키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 싸웠다.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에게 대항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요”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지구상에 종의 멍에를 메고, 독재자 한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나라가 존재한다는데 가슴이 아프다. 이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이를 위해 교회들이 연합하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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