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모든 사회의 질서는 약속의 지배를 받는다. 사실 약속의 틀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그 질서가 새로운 약속을 유발하게 한다. 이것의 구조적이고 공동체적이며 공공복리 적인 형태의 것을 우리는 법률이라고 이해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약속을 지키고, 또 새로운 약속을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우리 기독교는 언약의 종교다. 기독교의 언약 성을 구구히 말하려는 자체가 난센스다. 그 만큼 기독교는 언약의 질서의 터전에서 생성되고 그 언약의 신적권위에 순복한다. 뿐만 아니라 그 언약의 주체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엄위하심이 그 언약의 순도를 드높인다.

약속은 그 주체가 있다. 법률이나 공공의 약속은 대중성을 가지기에 불특정의 대중과의 약속을 성립시킨다. 그리고 여기에는 강제적인 것이 동원되기도 하고, 그 약속의 무게와 그 관계의 신뢰도에 따라 약속의 연속성이 유지 발전되어간다.

선진문화와 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은 이 약속의 신뢰를 가지고, 또 스스로 신뢰도를 높인다. 그것이 그 사회 구성과 조직의 힘을 극대화시킬 수 있으며 또 공공성을 유지하고 인격을 향상시킨다.

저급한 문화, 또는 저급한 사회구성은 힘의 논리에 지배를 받는다. 곧 힘이 법이다.

무엇 무엇을 따로 말할 필요조차 없다. 약속은 자기를 위하여 존재하며, 자신의 이기와 유익에 근거한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쫓아 약속하고, 스스럼없이 파기하며,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독단적이고, 상호적이지 않다. 약육강식의 동물과 원시사회의 개념이 통용되는 사회다.

저급한 인격들이 주체가 되고, 생산적이지 못하며, 미래 지향적이지는 더더욱 불가능한 사회 구조를 갖는다.

그들은 “약속은 파기하기 위하여 하는 것” 이라는 논리를 정당한 듯이 적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독설이다.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약속하고, 심각한 표정들을 지으면서 신뢰를 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또 속절없는 대중들은 그 약속을 그 어떤 권위로 받아들이고, 믿고, 따르지만 그 약속을 주는 주체들은 처음부터 약속의 저변에 또 다른 계산과 의도를 가지기에 순전하지도, 신실하지도 않다. 그 저변의 다른 의도와 계산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은 실망을 하게 되고, 좌절하게 된다. 그 공동체가 비록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의미가 없는 일이고, 모든 이들의 실망의 터전 위에 짓는 구름 위의 누각일 수밖에 없다.

우리를 돌아보자.

깨기 위해 약속하는 사람들이 혹 있는가. 그런 일은 있는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아집을 버리고, 자신의 기득권으로 표현 될 수 있는 것들을 다 명분과 하나 됨의 선한 일에 묻고, 우리는 하나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거기에 걸맞은 약속을 만들었다. 그 약속에 믿음을 가지고 우리들의 생명 같은 틀을 깨트리고, 우리의 영역을 포기하고 우리 서로가 하나임을 확인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이었고, 함께 고난과 비전과 기쁨과 감격을 소유한 하나다. 하지만 과거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붕당을 이루거나 자신들의 것이었던 것들을 포기하거나 승화시키지 못하고, 집착하면 공동체는 허약해지고, 말은 못하나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당혹하게 된다.

공동체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도록 허약하게 된다.

모두가 하얀 마음을 가졌기에 먹물 한 방울은 대단히 심각한 환경의 오염과 변질을 일으키고, 모든 사람들을 실망과 정신적 좌절과 충격에 쌓이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다. 생각이 똑 같을 수는 없어도 약속이 유지되어야 하며, 또 노력해야 하고, 또 그 모든 것은 새로운 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난날의 것들을 고집하고, 움켜쥐는 그것들로부터의 사고와 의식의 전환을 가져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지난날보다 오늘이 못한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자기표현이다. 좋았던 날, 시절을 반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나 그것은 새로운 날들에 대한 발전적 성취와 내일을 향한 도약의 재료로서 지난날이 경험이나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난날의 경험이나 선지식을 반추하는 지혜를 갖자.

문제는 오늘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자세이다.

안된다는 사람, 어떻게 하는가 지켜보자는 사람들은 결코 이 시대, 한국교회를 섬겨 내일을 만드는 동지일 수가 없다. 가장 순순하게, 우리의 장래와 한국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사심 없이, 소신껏 그리고 자신을 비우고 섬기면서 함께 일할 동지가 필요하다.

주님을 우러러 바라보고,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큰마음으로 우리 모두에게 기대와 소망의 선물이 되는 “언약”의 신실함의 증거를 보여 새 날들의 주인공이기를 기대한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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