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정치의 계절이 갑자기 찾아오고 보니, 대선 주자들 가운데 유달리 ‘통합의 정치’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오늘의 국난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통합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치인들이 말하는 통합이 어떤 성격을 지닌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적어도 다음 세 가지 형태의 통합은 절대 금물이다.
첫째, 익명의 무리로 사는 집단. 철새, 날파리, 물고기 등이다. 이들은 개체간에 우정이나 사랑이 없다. 단지 어떤 인력에 의해 서로를 불러들여 한 ‘떼’로 사는 것뿐이다. 물론 그렇게 사는 데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개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들 ‘떼’는 잘못 유도되면 집단 폐사를 당할 수 있다. 맹목적인 집단열광에 사로잡혀 재앙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인류는 항상 집단열광으로 고통을 겪어 왔다.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그랬다.

둘째, 개별적인 유대는 있으나 개체간에 사랑이 없는 사회조직. 서로가 이익을 위해서만 모일뿐이다. 이들은 동료 중에 누군가 불행을 당하면 나눌 몫이 커졌다는 의미밖에 없다. 동료 중에 누군가 죽으면 ‘자리가 비었다’는 의미밖에 없다. 가족이라 해도 진정한 가족이 아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돈 줄 때만 부모이지 무능해지면 외면한다. 무한경쟁 사회가 되고 보니 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이 적지 않다. 목회자 세계에서도 흔치않게 목격되는 장면이다.

셋째, 벌, 개미, 쥐들의 생활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 가족 이외의 동료에 대해 무자비한 부류. 쥐들은 가족 내에서도 서열이 없다. 무조건 힘 센 쥐가 지배한다. 이런 생존방식으로 인해 끊임없는 살육을 통해 강자만이 지배한다. 동족끼리 애정을 가지는 일이란 없다. 먹을 게 있으면 먼저 낚아채는 자가 임자이다. 나라도 인권도 관심이 없다. ‘배신은 무슨 배신, 성공하면 그만이지!’ 하는 식으로 사는 자들이다. 재벌공화국 사람들도 여기서 멀지 않다. 사실 이런 부류는 사람이라기보다 쥐과에 속한 종족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요즘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가담한 이들을 보면서 생각나는 종족들이다.

교회는 통합이 아닌 공동체를 지향한다. 무엇보다 영적인 공동체이다. 상처받은 동료 인간을 보듬고, 위로하고, 치유하고, 더 나아가 인류의 아픔을 치유할 소명을 지닌 공동체이다. 복음이 말하는 ‘영적인 존재’란 그런 뜻이다. 현존하는 교회들이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교회가 바라는 지도자는 바로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지도자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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