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호에서 새어나온
한숨이 멀리
몸 푸는 바다에 가 닿은 동안

고로쇠나무 옆구리를 찔러 뽑아내는
사람의 딸들

허리에는 창 자국
물과 피를 다 쏟은 빈 몸이
언 땅을 깨우고 있다

 

  - 시집   『맡겨진 선물』에서 발췌
* 남금희 시인 : 이대 영문과, 대구가톨릭대학교(문학박사.), 경북대 초빙교수 
* 수상 : 창조문예 아름다운 문학상. 기독시작품상

 

▲ 정 재 영 장로
입춘은 생명의 봄의 입구다. 마지막 연의 창자국과 수액을 뽑는 도구를 연결시켜 고난기간을 연상하게 해준다. 남금희 시인은 천상적 이미지인 신앙 대상을 지상적 이미지인 고로쇠나무와 연결하는 시의 생명이자 기본에 충실하고 있다. 이것은 항상 지적 통제력을 가지고 대상을 관찰하는 순간 소위 통찰(insight)에 의한 창작능력이다.

많은 기독시인들이 은유라는 암시성을 자주 잊는다. 시란 관념이나 사물에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시에서 ‘관념이나 정서로부터 도피’라는 말은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처럼 임금님에게 옷을 입혀 임금님의 모습을 만드는 것과 동일하다. 왕관을 씌우면 그 사람이 임금님이라는 뜻이고, 거지옷을 입히면 거지라는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는 고로쇠나무의 모습에 창자국의 의미를 씌워 입춘 무렵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말하려 한다. 단순한 봄이라는 절기를 뛰어 넘어 고로쇠나무의 수액채취 모습과 십자가상의 고난의 모습을 새로운 의미를 주는 옷을 입혀 놓고 있다.

이런 작업을 변용이라 한다. 얼굴 바꾸기라는 의미다. 모든 시는 변용의 작업에 속한다. 형상화라는 말도 넓은 의미의 변용이라는 말과 같다. 투명한 존재를 감각하는 존재로 만드는 일에서 시는 이미지 작업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예시는 입춘 무렵의 고로쇠 수액 채취 모습을 보고 십자가의 고난으로, 십자가의 고난이 새생명 창조의 순간으로 연상시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창조적 상상으로 만든 변용에서 시적 감동을 받는다.

비유도 마찬가지다. 남이 쉽게 생각하는 비유를 사비유라 하듯 시의 미학성이나 창조성은 산문과 달리 내용을 뛰어 넘는 기법이 매우 중요하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