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제1장 종교개혁이란 무엇인가?

종교개혁은 루터가 처음 시작한 것도 아니고, 계획한 것도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적 간섭으로 성취된 복음의 회복운동이요, 지금도 계속 진행되는 하나님 나라의 전개 과정에 들어있는 정신이다. 루터 스스로가 종교개혁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의 어떤 성취나 업적에 대해서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루터는 1512년 스물여덟 살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기에, 대학교에서 부여해준 권위에 따라서 교수의 직분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임무가 복음을 성실하게 소개하는 일이라고 확신했고, 그래서 성경의 권위 아래 복종하려고 노력했던 것일 뿐이다.

1. 개혁은 혁명이 아니다!

먼저 종교개혁의 성격을 분명하게 규명하고, 그 전개과정과 관련된 신학적인 토론들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그저 막연히 종교개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기본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구별해 보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중세 시대의 부패와 무능력한 로마 가톨릭 교회를 새롭게 개혁하려는 움직임들은 여러 그룹에 의해서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1524년에 토마스 뮌쩌가 시작한 독일 농민혁명이 일어났고, 낡고 부패한 세상을 바꾸고자 했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뮌쩌의 농민혁명을 높이 평가하면서 기성 체계와 상류층 부르주아에 대항한 최초의 혁명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루터를 비롯한 개신교회 지도자들은 “혁명”(revolution)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으니, “개혁”(reform)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정치적 혁명노선과는 아주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은 프랑스 혁명이나, 농노들이 일으킨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공산주의자들의 계급투쟁과는 근본적으로 합일되는 부분이 전혀 없다.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자들과 역사가들은 로마 교회에 복종을 거부했던 종교개혁을 사회적 혁명의 일환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하이코 오버만 박사가 지적하듯이, 종교개혁자들 중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우파’ 와 ‘좌파’ 혹은 ‘급진파’ 사이의 대립, ‘군주파’와 ‘대중파’의 갈등을 주도한 적이 없다. ‘교육받은 신흥 지도층’과 ‘기득권층’ 사이의 계급타파를 부르짖은 프랑스 대혁명이나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과 같은 방식을 전혀 알지도 못했었고, 그런 시도마저도 해본 적이 없음에 유의해야 한다. “혁명”가들이 말하는 아래로부터의 개혁, 인권존중과 인권쟁취를 위한 투쟁 등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념들이었다.

“개혁”은 하나님의 율법과 정의를 교회와 세상 속에 정착시키고, 위로부터 내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는 것이다. 루터는 세속 권세에 맞서서 정권을 뒤엎으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1523년에 세속의 권위를 인정하는 정치적 관점을 제시하였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서 죄를 통제하는 시민정부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것이다. 다만, 통치권을 위임 받은 세속정부는 무고한 사람들을 보호하여야 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군대를 사용해 보호한다고 요청했다. 루터, 칼빈, 부써, 쯔빙글리, 영국의 종교개혁자들도 역시 “군주제 종교개혁 운동가들”이라고 불리운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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