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고 현 목사

오늘 한국교회는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는 사교집단으로 변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목회자 역시 부자교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이들에게만 축복기도를 해 준다. 그만큼 교회의 문턱이 높아졌다는 애기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사업이야기와 부자된 이야기를 나눈다. 이것을 축복이라고 말한다.

이제 교회 안에서 믿음의 척도를 헌금의 액수라고 말까지 떠돈다.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다 보면, 헌금봉투가 두꺼운 사람만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중세 타락한 카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와 다를 바가 없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제2의 종교개혁을 부르짖는다. 기념행사 역시 주류교회들이 담당하고 있으며, 기념행사에 들어가는 경비를 위해서 부자교회의 목회자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렇다 보니 아이러니 하게도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 보잘 것 없는 사람, 떠돌이, 병신, 노동자, 농민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교회에 나올 수 없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이것은 교회가 아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95개항 중 94개항이 돈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하는 한국개신교회는 돈!돈!돈! 돈의 돈!돈!을 외친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들어갈 갈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던 교회들 마저도 세속화되어 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분명한 것은, 교회는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사랑하고 용납할 수 있는 곳이다.

예수님은 항상 잃은 양 한 마리와 소외된 자들을 찾아 가시밭길과 벼랑 끝을 헤매셨다. 그것은 예수님의 잃은 양 비유에서 잘 나타나 있다. 목자는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어깨에 매고 돌아와 기쁨에 넘치는 잔치를 벌인다. 얼마나 감동적인가(?)

자기 개인의 욕심이 채워지고, 자기가정의 행복만 이루어지면, 세상이야 어찌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목자의 행동이 어리석게 보일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어리석은 사랑이다. 이런 사랑은 어리석지만, 무조건이며 초월적인 아가페 사랑이다. 예수님 교훈인 어리석은 사랑에 하나님의 진리가 담겨 있다. 잃어버린 자를 남겨두고, 인간이 인간으로 될 수 없다. 상처받고 버림받은 사람을 외면하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잃어버린 자를 방치하면 토대가 무너진다. 이 공동체는 곧바로 해체된다. 한 마리의 양을 버리는 목자는 나머지 아흔아홉마리의 양도 버릴 수 있다. 한사람의 아픔을 외면하는 공동체는 수명을 다한 공동체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소외된 이웃을 얼마나 잘보는가에 따라 그 사회와 교회의 성숙도를 가름할 수 있다.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줄 때, 이들을 구원한다기 보다도, 내가 이들을 통해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버려진 인간들에 의해서 구원받고, 이들의 고통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고, 이들의 고통을 통해서 이 세상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예장 보수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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