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후면 3.1운동 98주년을 맞게 된다. 3.1운동은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채 암흑 속에 방황하던 우리 민족이 세계 앞에 당당히 자유와 평화와 정의를 부르짖은 위대한 역사이다. 3.1운동은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소명에 부응한 기독교지도자들이 민족의 희망을 준 대표적 사건이며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건국의 주춧돌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국론 분열과 극심한 대립으로 또다시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민족은 19세기 말 제국주의시대의 압력 앞에서 단합하지 못하고 갑론을박으로 사분오열돼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광복의 기쁨도 좌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서로 싸우다 끝내는 남북 분단으로 이어졌다.

지금 우리는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또다시 국민 분열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5천년 역사 속에서 이런 고비는 숱하게 겪었다고 안심하기에는 그 골이 너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정치인들이 주말마다 여야로 나뉘어 집회현장에 나가 불을 끄기는커녕 오히려 부채질하는 모습이 오늘 우리 정치의 수준이다. 이러다가 역사의 큰 파도를 보지 못한 채 나라와 공동체의 파멸을 초래했던 과거의 비극이 되풀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든다.

그런데도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도자들이 지혜를 모으고 그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별로 눈에 띠지 않는다. 며칠 전 국회의장과 4당 원내대표가 모여 헌재의 탄핵심판 결과가 어떻게 나든지 승복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여야 정치인들이 어떤 합의를 하든 결국 국민들의 몫이다. 국민이 승복하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는 싸움이다.

만일 한국교회가 국난에 처한 대한민국의 갈등을 봉합하고 치유하는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그 보다 의미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과거 3.1운동 당시 꺼져버린 민족에 등불을 밝히고 국론을 모았던 기독교지도자들처럼 한국교회가 오늘의 혼란한 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면 분명 위기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점에서 주요 교단장들이 보여주는 행보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세월호 5주기에 열리는 부활절연합예배를 세월호 관련 구설수에 오른 특정 대형교회에서 드린다고 발표한 것은 그렇다 치자. 한국교회 분열을 회개한다면서 또 다른 연합단체를 만들어 기득권 몰이에 나선 모 연합단체가 주최하는 대각성기도회는 과연 이 시점에서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각성하라는 것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모 일간지에 전단광고로 실은 내용을 보면 “100년 전 3개 교단으로 출발한 한국교회가 지금은 300여 교단으로 분열된 충격적 현실”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뒤에는 “한국교회 성도님들은 오늘의 비극적 현실이 모두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십시다”라고 덧붙였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이런 대담함은 차라리 뻔뻔함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교단을 분열시키고 기독교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또 오늘의 혼란한 시국까지 모든 게 교회 열심히 나가는 성도들의 탓이라고 인정하면 목사라는 이름의 지도자들의 죄와 허물이 조금쯤 가벼워지겠는가.

이 광고는 7개 대형 교단장들의 사진을 공동대표대회장이라는 이름으로 일정한 순서를 정한 듯 차례로 실었더니 그 다음날 똑같은 내용으로 교단장들 사진만 가나다 순으로 바꿔 다시 게재했다. 누군가 무슨 이유로 내 사진을 누구보다 뒤쪽에 실었냐고 항의하지 않은 이상 사진 순서만 바꿔 다시 광고를 낼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런 분들이 맨 먼저 오늘의 혼란한 시국의 책임을 통감하며 스스로 각성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순종을 목숨처럼 여기는 애꿎은 교인들을 체육관에 모아놓고 억지 죄의식을 심어주고 회개를 강요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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