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 핀다

내 첫사랑이 그러했지
온밤내 누군가
내 몸 가득 바늘을 박아 넣고
문신을 뜨는 듯
꽃문신을 뜨는 듯
아직은
눈바람 속
여린 실핏줄마다
핏멍울이 맺히던 것을
하염없는
열꽃만 피던 것을……

십수삼 년 곰삭은 그리움 앞세우고
첫사랑이듯
첫사랑이듯 오늘은
매화가 핀다

▲ 문 현 미 시인
아직도 잔설이 드문드문 눈에 뜨인다. 지역에 따라 눈이 조금은 더 올 것 같다. 어렸을 땐 눈이 오는 것이 참 좋았다. 눈만 오면 밖으로 뛰쳐 나가 꽁꽁 어는 것도 잊은 채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곤 했다. 그러다가 철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첫 눈이 내리면 왠지 두근거리고 남학생들을 보면 부끄러워서 빨개지곤 했다.

시적 화자의 첫 사랑은 매화가 필 무렵 시작되었나보다. 아니면 엄동설한에 피는 매화처럼 그렇게 사랑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든지. 지금은 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계절이다. 그래도 언 땅 아래 뿌리들은 모진 시간을 견디며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꽃 피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매화는 일찍 핀다고 하여 조매(早梅)라고도 하고 눈속에서 핀다고 하여 설중매(雪中梅)라고도 한다. 그만큼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꽃이 매화이다. 그래서 꽃 중의 꽃이라 하여 화형(花兄)이라고도 하고 꽃말도 인내, 고결, 기품이다.

시인은 매화가 피는 상황을 첫 사랑 때의 감정에 비유하여 표현했다. 누구든지 첫 사랑의 추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 열병을 앓으며 사랑의 고통으로 가뿐 숨을 몰아 쉬던 때가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내 몸 가득 바늘을 박아넣고/문신을 뜨는 듯”하다고 할까. 하지만 힘들어도 “꽃문신”을 뜬다고 하니 아름다운 고통이다. 더욱이 “눈바람 속/여린 실핏줄마다/피멍울”이 맺히고 하염없이 ”열꽃“만 피던 사랑이니 오죽 힘들었을까. 시적 화자는 “십수삼년동안 곰삭은 그리움을 앞세우고” 매화가 핀다고 한다. 그런데 이토록 오랜 그리움의 끝자락에 피는 매화가 “첫사랑이듯 첫사랑이듯” 핀다고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다. 이 시의 묘미는 동일한 시어와 시구의 반복에 있다. 처음 시를 여는 연이자 행이 바로 “매화가 핀다”인데 마지막 행도 마찬가지이다.

한 편의 시에서 리듬은 본질적인 구성 요소이다. 이 시는 시어나 시행의 반복을 통하여 음악적 효과를 나타냄으로써 시의 분위기를 봄의 생동감으로 이끌고 있다. 시의 제목이 “매화가 필 무렵”이니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뿌리가 어둠의 시간을 견디며 얼마나 치열하게 움직였을지 상상해 본다, 머지 않아 매화 향기 자욱한 봄이 오리라. 매화 향기는 코로 맡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는 향기’라 했다. 잠잠히 자신을 돌아보며 봄을 기다릴 때 비로소 그 향기 들려오는 것을.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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