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성 목사

사순절이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부활절인 4월 16일 하루 전인 4월 15일까지 주일을 뺀 40일의 기간이다. 사순절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 모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그 커다란 은혜와 죽어 마땅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신실한 성도들은 매년 사순절 기간에 보다 거룩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여행이나 취미생활 등 오락적인 행위를 자제하고 근신하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한 성경 읽기와 기도에 열중한다.

또한 사순절 마지막 주간인 고난 주간에는 외출을 삼가고 금식하는가 하면 그 동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비뚤어진 삶을 회개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곤 한다. 두발과 양손에 못 박히고 가시관을 쓰시고 창에 찔려 피한방울 남김없이 쏟아주신 주님의 고난에 조금이나마 동참하기 위해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40일간의 사순절 기간은 성도들이 스스로 자기 신앙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자정기간이며 세상의 유혹에 이끌려 조금은 흔들리는 신앙을 다잡는 기간이다.

그러나 교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각종 행사들은 이와 같은 신실한 성도들의 거룩한 자세보다는 어딘가 보이기 위한 이벤트로 전락한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부활절연합예배를 준비하면서 흘러나오는 불미스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귀를 의심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행사의 요직이 행사를 위한 헌금액수로 결정된다느니 보다 많은 성도들을 모으기 위해 설교는 큰 교회 누가 해야 한다는 식의 사람 냄새가 너무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크고 많은 것만을 추구하는 물량주의자들이 판을 치는 한국교회의 저급한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크고 넓은 장소에서 휘황찬란하게 예배를 드리고 세를 과시하는 것이 복음전도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고 강변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절예배만큼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그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경건하고 거룩하게 드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뜻 깊은 고난주간을 보내고 부활절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 모두가 보다 진지하게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행사는 일회성으로 끝나고 말지만, 비록 작은 일이지만 보고 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두고두고 한 평생 잊혀 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실 십자가의 고난, 부활절의 의미를 간략하게 말한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다. 그것을 단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랑이다.

사순절에서 부활절까지 교회의 모든 행사를 사랑을 실천하는데 역점을 둔다면 분명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감동을 주게 될 것이다. 사랑이란 곧 용서하고 아낌없이 주는 것인데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사순절과 고난주간, 부활절을 통해 이웃을 용서하고 줄 수만 있다면 주님께서도 기뻐 받으실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성도들의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추운 겨울 거리 곳곳에 누워 떨고 있는 노숙자가 있고, 불의에 항거하다 감옥에 갇혀있는 양심수가 있고, 병든 몸을 가눌 수 없어 골방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환자가 있다.

그 뿐인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병든 몸을 이끌고, 하루에 몇 천원을 벌기위해 넝마주이를 하는 불쌍한 노인들도 있고, 힘 있고 가진 자들 중심으로 짜여진 잘못된 사회 제도와 구조에 짓밟힌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다.

이처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인 예수님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데도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우리들이 이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우리 모두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기억하면서 신음하는 우리의 이웃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샬롬교회 담임,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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