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순절은 3월1일 재의 수요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해마다 돌아오는 사순절은 주님이 나를 살리기 위해 고난을 당하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절기이다. 40일간 이어지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로 이어지는 사순절은 복음의 핵심이다.

사순절은 나를 위한 절기가 아니고 예수님을 위한 절기이며, 나를 위해 예수님을 생각하는 절기가 아니고 예수님을 위해 나의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절기이다. 이 기간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빚진 자인가를 생각하며 나를 위해 멸시받고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마음깊이 묵상하며 보내야 한다.

그런데 올해 사순절 첫날이 공교롭게 3.1절 98주년과 겹쳤다. 3.1절은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채 암흑 속에 방황하던 우리 민족이 1919년 3월 1일 세계 앞에 자유와 평화와 정의를 부르짖은 위대한 3.1만세운동을 기념하는 날이다. 민족적인 고난 앞에 좌절하지 않고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되살린 3.1운동이야말로 사순절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올해 한국교회는 사순절을 시작하는 첫날인 뜻 깊은 3.1절에 광화문광장에 수 만 명의 성도들이 모여 구국기도회라는 것을 가졌다. 한국교회 보수의 분열로 대변되는 한기총과 한교연이 모처럼 뜻을 같이한 자리여서 더욱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날 기도회가 순수한 기도회라기보다는 시국 정치집회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 심판이 가까워지면서 주말 서울 도심은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로 극렬한 국론 분열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 촛불이 상징하는 탄핵 찬성측과 태극기로 대변되는 탄핵 반대측이 저마다 지지세력을 끌어모아 극한의 대결을 펼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보수 기독교연합기관들이 교인들을 동원해 구국기도회를 개최하고 그 여세를 탄핵 기각으로 몰고 간 것이 과연 사순절을 시작하는 이 시점에 부합하는 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거에도 해마다 3.1절이나 6.25, 8.15를 기해 일부 기독교단체들이 시국집회 성격의 기도회를 개최해 온 전력이 있다. 그때마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광장을 뒤덮었으니 오늘의 광경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탄핵문제로 촛불과 태극기로 국론이 분열되고 극한의 세 대결이 펼쳐지는 마당에 기독교가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에 서는 것이 과연 합당하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NCCK는 3.1절에 앞서 성명을 내고 “현 정권의 국정농단 무리들에 대한 특검과 탄핵이 이루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한술 더 떠 탄핵을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태극기집회를 열고 있는 일부 보수단체들이 98주년 3.1절을 맞이하여 태극기집회를 개최하겠다는 소식에 개탄해 마지 않는다”며 특히 그 집회를 주도하는 기독교단체에 화살을 돌렸다.

촛불은 옳고 태극기는 그르다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정치적인 입장을 행동에 옮기는 것을 나무랄 사람은 없다. 다만 기독교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의 정신에 따라 행동해야 할 책임이 더 있다. 십자가의 수난 없이 부활의 영광이 없듯이 자기 성찰과 깊은 회개 없는 신앙운동은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사순절에 기독교가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봉합할 것인지, 아님 더 악화시킬 것인지 좀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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