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경 목사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신이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한다.

흔히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모두 행복한가?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경험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사랑이 생각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을 위해 노력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사랑하기에 얼마나 부족하고 이기적인 존재인지 깨닫게 되고 낙담하는 슬픈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사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서로 사랑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거나, 실천하지 않아서 사랑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불행을 경험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사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이것은 하지 않으려고 해도 저절로 되는 사랑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또한 어렵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랑 안에 존재하신다. 인간이 자신을 사랑하는 그 중심에도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 바로 사랑의 원천이며 그 사랑이 내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진정한 ‘자기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사랑에 반응하고 그 사랑의 힘으로 나를 먼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것, 내가 대가 없이 받았음으로 대가 없이 주는 것,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가 되고 이를 기독교인의 사랑이라 한다.

‘사랑’을 단순히 ‘자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흔한 것 같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사랑에는 더 넓은 의미가 있다. 기독교인의 사랑은 타인에 대해 좋아하거나 애정을 느끼는 것과 다르다. 좋아하는 마음이나 애정이 생기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넓은 의미의 사랑이다.

자기 마음속에서 사랑의 감정을 찾을 수 없기에 타인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은 기독교인의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면 감정도 없는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기도하며 억지로 사랑의 감정을 만들어 내려 애쓰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시도를 하다 실패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이 타인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낙심하며 자기에 대한 사랑에도 상처를 입는다. 슬프고 불행한 일이다.

사랑의 비밀은 간단하다. 행동하면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타인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못하는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먼저 사랑한다고 가정하고 행동하라. 그러면 곧 사랑의 위대한 비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친절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친절하게 대하려 하다보면 점점 많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가족사랑, 교우사랑, 이웃사랑으로 나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처음 느끼는 사랑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본능이며 필연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다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는 많은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가족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 보자.

교우는 영적인 가족이다. 매주 만나는 특별한 가족으로 우리의 마음이 약해지고 두려움에 방황할 때 회복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육신의 가족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깊은 위안이 되어 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길 원하신다. 영적인 가족 없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사랑하고 겸손하게 대함으로서 서로에게 영적인 가족이 될 수 있다.

이웃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열매다. 하나님을 사랑하다보면 결국에는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신과 가족과 교우와 이웃을 사랑하자.

예장 열린총회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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