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문제는 어떻게 형법과 인덕을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확한 방향은 어는 한쪽에 치우치거나 폐하지 말며 서로 보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하늘은 음(陰)과 양(陽)의 두 기운으로 일년 사계절을 이루며, 사람은 형벌과 덕의 두 가지 법으로 다스리는 도를 이룬다. 그러므로 성인이 정권을 잡더라도 어느 하나에 치우쳐서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덕을 많이 사용하고 형벌을 비교적 적게 사용한 사람이 오제이며, 형벌과 인덕을 함께 중요하게 쓴 사람이 삼왕이고, 형법을 비교적 많이 사용하고 인덕을 비교적 적게 사용한 사람이 오패이며, 형법과 폭력만을 사용하여 나라를 망하게 한 자가 진시황이다.

예날 나라를 다스릴 때의 정치제도를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왕자(王者)의 정치로서 인문 교육에 의거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패주의 정치로서 형법의 위력에 의거한 것이며, 또 하나는 강권 정치로서 폭력과 잔혹한 형벌에 의거한 것이다.

교육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면 형법으로 강요하고, 형법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면 폭력으로 진압하고, 폭력도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면 곧 학살이 그 규율이었다.

학살의 단계가지 가는 것은 왕자들이 찬성하는 바가 아니었으니, 이 때문에 당태종의 명신(名臣)인 ‘우세남’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진시황은 인의(인의)를 버리고 폭력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비록 6국을 삼킬 수는 있었지만 천하를 통일한 뒤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형법으로 나라를 다스린 폐단인가 하옵니다!”

작금에 대통령의 탄핵 문제로 인하여서라고나 할까?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그 직을 어떻게 수행 하여 왔을까? 또한 위정자(爲政者)들은 물론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한 것 높아진 상태이다. 따라서 우리는 올바른 지도자 상에 대한 관심도로 리더싶 등의 책이 서점가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성경도 올바른 지도자 상에 대하여 증거 한다. 그러나 성경이 증거하는 지도자는 사랑에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한다.

‘세례 요한’이 자신의 죄를 지적함에 ‘헤롯’은 ‘세례 요한’의 목을 치는 사악함을 보였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선지자 ‘나단’에게 무릎을 꿇었다.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다가가 자식들이 사로잡혀 갈 것이며,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엄청난 말씀으로 책망 하였음에도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으로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이 증거 하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보여 짐과 같이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목숨에 개의 하지 않고 절대권력 자에게 다가가 죄를 지적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지도자가 진정한 지도자이며, 또한 어떠한 자세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우리는 성경에서 간단히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너희를 사랑 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5:12). 하신 예수님의 명령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 장 8절)라는 말씀을 믿는다면 성도라면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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