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어

대학 노ㅡ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정 재 영 장로
금년은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1917년 12월 30일에 태어나 1945년 2월 16일까지 27년의 짧은 삶을 살았다. 아명은 윤해환(尹海煥)이며 본관은 파평(坡平). 중국 만주 지방 지린 성 연변 용정에서 출생하여 그곳 명동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숭실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실중학교 때 처음 시를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일본 유학 후 교토에 있는 도시샤 대학(同志社大学) 재학하였으며 현재 그의 시비가 그 대학에 있다.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시 속의 정황을 상상해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중적 구도 특징을 가진다. 밖은 비가 내리고 방안은 부모님의 학비봉투가 있는 외국의 방, 미완의 학생과 원숙한 노교수의 설정, 상실한 동무와 자기 속에 앙금(침전)으로 남음의 존재의식, 살기 어려운 인생인데도 쉽게 씌어진 시에서 오는 자아에 대한 살핌, 등불과 어둠으로 비유한 시대상에 대한 인식, 자기 자신과 악수하는 자아에 대한 존재의미 등, 모두 이중구도다.

육첩방은 다다미 6개로 3평 정도의 크기의 보통 방이다. 여기에 ‘땀내의 사랑’으로 비유한 부모님의 사랑이 방 안은 포근함으로 말하고 있다. 다만 비가 내리는 외국의 방 안 모습에서 시인의 자아 현실을 대신 그리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당시 현실이나 현재 우리의 삶도 그리 다르지 않다. 언제나 고독 속에 사랑의 최고형상인 부모의 헌신적인 모습, 동무와 같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아인식이나 실존인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보통 시가 쉬운 것은 아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인은 시가 쉽게 씌어졌음은 다행이 아닌 부끄러운 일일수도 있다는 고백을 한다. 따스함과 외로움, 한계적 존재의식과 의망에 대한 미래의식 등이 작품 안에 동시적으로 설치해주고 있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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