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조금 전 아내와 함께 중국에 도착하여 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작지 않은 호텔인데 옷도 갈아입기 전에 느닷없이 공안 5명이 호텔직원과 함께 필자의 방을 찾았다. 그들은 인적사항을 적을 인쇄물을 내밀며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리 중요한 내용도 아니고 표정도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중국을 출입하면서 처음 당해본 일이라 불쾌하기를 떠나 지금의 한중관계를 떠올리며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특별한 질문없이 빙빙돌던 그들은 필자의 명함을 보고서야 돌아갔다.

필자는 이 불심검문이 한국의 사드 배치로 불거진 불편해진 양국 갈등의 한 표출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한번도 없던 일을 느닷없이 겪은 지금, 마치 이 일이 양국의 갈등으로 한 개인이 입는 해프닝 같은 느낌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육지와 해안을 맞대고 있는 중국과의 유구한 애증의 역사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대륙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완전한 속국이 아니었고, 대국을 섬겼으나 종속 의지를 가진 적이 없었다. 양국의 역사들이 그 사실들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나라가 중국을 대국으로 섬길 이유도 없고 그럴 처지도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영토가 작다고 하여 소국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 격에 맞지 않는다. 지금은 국제사회에서 영토의 크기로 대국과 소국을 구별하는 것은 아니라, 그 나라가 보여주는 국제적 신뢰도와 그 국민이 향유하는 문화수준, 그리고 저소득 약소국을 돌아보는 국제적 동반자 의식수준이 대소국의 구별 기준이다. 적어도 이 수준을 강대국의 지표요 국제사회 리더로서 선진국의 자격으로 본다면 지금 미국과 중국은 적어도 이것들 중에 각각 한 가지 이상씩을 결여하고 있다.

트럼프 신행정부의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와 미국중심의 정책은 가장 유치하다. 힘이 있으니 그 힘에 굴복하지 않는 나라는, 그리고 미국의 이익에 협조하지 않는 나라는 동맹이고 뭐고 가차없이 불이익을 주겠다는 트럼프의 일갈은 미국내 소수로부터는 환영을 받을 것이나 지금까지 누려왔던 국제사회에서의 지도적 위상은 더 이상 보장받을 수 없다. 대통령이 자국의 이익과 안전을 지키겠다는 것을 나무랄 수 없지만, 그것을 위해 타국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일은 할 일은 아닐 성 싶다.

과연 중국이 모든 갈등을 무릅쓰고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는 한국의 처지를 모르고 있을까? 결코 사드 배치문제가 중국이 한국을 때려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을 텐데도 굳이 롯데의 숨통을 누르고, 반한 혐한 감정을 고조시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원인은 우리에게 있는 듯하다. 동아시아 주도권 다툼은 한,중,일이 주역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일본 아베는 장기 집권의 길과 군사대국화의 길을 열고 중국과 대립하고, 그런 일본과 연대한 한,미,일의 견고한 군사적 협력이 중국으로 하여금 긴장하게 할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이런 시기에 대통령이 없는 한국의 극단적인 혼란은 이 연대를 깨뜨리기에 더 좋은 기회가 된 것이다. 적어도 앞으로 두달 이상은 혼란을 수습할 사람도, 수습할 수도 없어 외교적 문제에 관한 한 무기력 그 자체의 국가가 되고 말았다. 기회가 이때라는 말이 너무 가혹할까? 중국은 이 기회에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한국을 두들기고 있다. 이는 한,미,일의 공동전선을 무너뜨리고, 이를 기화로 중국의 이익에 반하지 못하도록 한국을 길들이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도 명백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두들기는 중국을 탓하지 말고, 동맹은 동맹이고 국익은 국익이라는 트럼프를 원망하지 말고, 국민들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위기를 넘겨야 한다. 더 이상 국론분열은 안된다. 더 이상 이념논쟁도 안된다. 더 이상 현실의 안주도 안된다.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하고, 더 강한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국난의 현실에서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번 더 힘을 내고 뭉쳐서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거센 저항을 넘어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그 나라를 향해 가야 한다. 안에서 서로에게 돌을 던지다가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생각에 호텔에서 공안을 내보낸 뒤에 해일처럼 밀려오는 감정의 찌꺼기를 모아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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