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상반기부터 한국교회 연합사업이 활발하다. 종교개혁500주년을 맞은 해이기도 하고, 3.1절 98주년, 부활절 등 굵직한 날들이 상반기에 즐비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각 연합기관 및 단체, 혹은 친목성격의 단체(?)마저도 대형 집회나 기도회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마치 100m를 향해 질주하는 스프린터마냥 쉼 없다.

물론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고, 98년전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목숨 바쳤던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되새기며, 무엇보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뒤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일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렇게 뜻 깊은 날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행사를 단순한 ‘돈 잔치’로 전락시키는 데 있다. 해마다 “올해는 어떤 대형교회 목회자가 부활절 연합예배(혹은 대형집회나 기도회) 설교를 맡을까?”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욱이 각종 행사에서 돈에 대한 수입은 있는데, 지출에 대한 사용처는 명확하지가 않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한국교회의 연합사업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대형 집회나 기도회 등의 수입과 지출에 대한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뿌리 깊이 박힌 종창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최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가톨릭, 불교에 이어 꼴찌를 달렸다. 매번 같은 결과에 식상할 수도 있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씁쓸한 상황이다.

특히 한국교회가 신뢰를 얻기 위한 개선책으로 ‘불투명한 재정사용’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 오늘 한국교회가 얼마나 불투명한 재정사용을 하는 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불투명한 재정사용도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각 교회나 단체에서 사회법정으로까지 가면서 갈등을 보이고 있는 것도 모두 재정의 불투명에 있다.

이러한 문제는 개교회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한국교회의 내로라하는 대형교단, 대형교회, 지도자들이 한 데 모여 벌이는 3.1절 기도회, 통일기도회, 부활절 예배 등 연합사업 안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솔직히 각 행사의 시작은 있는데, 끝은 없다. 그만큼 각 행사에 대한 결산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입과 지출에 대한 자세한 내역을 밝히기 보다는, 최대한 ‘쉬쉬’하는 분위기다. 총 수입이 얼마에서 어떠한 부분에 어떻게 지출이 됐는지 소상하게 밝혀, 혹시 누락되거나 과대하게 지출된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행사 때 그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바로미터로 사용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고 있다.

오로지 “이번에도 적자가 났다”는 두루뭉술한 말만 내뱉고 있다. 수십, 수백, 수천, 수만의 사람들의 헌금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그 출처를 분명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좋은데 사용했겠지”라며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특별하게 의구심을 표하거나, 출처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바라는 성도들이나 목회자들도 별로 없다. 자칫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데 인간의 잣대로 판단해서 무엇을 하느냐”고 되레 핀잔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치러진 대형 집회나 기도회 등과 관련 결산보고에 대해 큰 문제제기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도 살폈듯이 불투명한 재정사용은 한국교회가 반드시 고쳐야할 병폐다.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재정의 투명한 사용을 만천하에 낱낱이 밝혀야 한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연합 사업 뿌리 뽑아야
연합 사업으로 얻은 수익 반드시 사회 환원 뒤따라야

단순히 믿고 따르라는 속삭임으로는 뿌리 깊이 박힌 종창을 제거하지 못한다. 그저 믿고 따르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무엇보다 은혜로워야 할 집회와 기도회를 유명세 좀 타보자는 일부 목회자의 등용문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또 속된 말로 ‘꾼’이라 부르는 일부 파렴치한 목사들의 대형교회의 곳간을 터는 일도 눈감아 주도록 만들었다. 오죽하면 부활절 연합예배가 생명을 잃어 버렸고, 십자가 신앙을 찾아볼 수 없다고 토로할 정도다. 집회나 기도회의 의미는 온데간데없이 휘황찬란한 겉모습만 있을 뿐이다. 말 그대로 내로라하는 대형교단, 대형교회, 유명 목회자들의 집합소로 전락했다는 것이 바로 오늘 한국교회의 연합 집회와 기도회의 현실이다.

누가 메시지를 선포하나

한국교회의 크고 작은 행사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를 받는 부분은 바로 누가 메시지를 선포하느냐이다. 그것도 3.1절 구국기도회를 비롯해 부활절 연합예배, 8.15 광복절 기도회 등등 굵직한 연합예배의 경우 설교자가 차기 한국교회를 주름 잡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돌 정도다. 그만큼 대형 집회나 기도회에서의 설교 자리(?)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 설교 자리를 하나라도 꿰차기 위한 노력(?)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실태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일부 목사들이다. 이들은 설교 뿐 아니라, 기도, 성경봉독, 심지어 광고 등 작은 순서라도 맡아보려는 목회자들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하고 있다. 드러내놓고 밝혀지진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관행처럼 잘못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는 몇몇 행사의 순서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한 시간 남짓한 예배를 드리는데, 기도에 격려사, 축사 등 순서를 맡은 사람은 무려 20명이 넘는 경우도 있다. 설교를 제외하고는 한 사람 당 채 2분의 시간도 쓰지 않는다. 그래도 순서에 이름이 올라가기만 한 것이 이들에게는 큰 감동이자, 축복이다. 이마저도 이름이 오르지 못한 이들은 왠지 서운한 마음까지 든다. 진정 2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을 얻기 위해 내어놓는 것이 효율적인지는 되묻고 싶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관행이 한국교회를 망치고 있다고 주저 없이 말하고 있다. 또 이러한 관행이 한시라도 빨리 사라져야 온전한 연합 사업이 전개될 수 있다고 외치고 있다. 이러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있어서도 이러한 행태는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발생하고 있다.

간단한 예로 최근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3.1절 구국기도회의 사건만 해도 투명한 재정사용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의도여부와 상관 없이 기도회 며칠 전부터 소위 탄기국관의 관계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주최측은 아니라고 잡아땠지만, 현장에서의 모습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모습이었다. 물론 후에 해명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무마했지만, 사람들의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기도회의 수입과 지출의 불투명성에 있다. 모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이번 행사를 위해 A교회에서 1억 5천만원을 보내왔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문제는 1억 5천이라는 사용 출처다. 순수하게 기도회 장소 대여비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다. 그렇다고 현장에서 뚜렷하게 무엇인가를 특별히 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 일각에서는 1억 5천을 제외하고도, 나머지 헌금이나 후원금에 대한 출처를 궁금해 하고 있다. 국가안보와 한국교회, 정치안정, 경제회복, 사회통합, 통일한국 등을 위한 한국교회의 염원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 해도 수입과 지출에 대한 정확한 보고는 이뤄져야 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당일 탄기국과의 관계에 대한 해명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지출 내용과 관련한 계약서라든지, 헌금의 사용출처, 각종 계약관련 문서를 공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마찬가지로 몇 해 전 부활절 연합예배에서도 내부적인 최종 결산보고를 마쳤지만, 그 내역 공개를 꺼려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들은 결산 내역서를 뒤늦게 제공하면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수입과 지출에 대한 부분을 제거해 의혹이 증폭됐었다. 당시에는 교단 분담금을 미처 납입하지 않은 교단들의 명단이 공개될 경우 연합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댔지만, 의혹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분담금을 납입하지 않은 교단들을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입장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입과 지출에 대한 부분은 속 시원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또 다른 행사는 하루면 끝날 것을 3일로 늘려 행사를 진행했다. 그 기간 동안 무대에 세운 설교자만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7~8명에 이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도, 성경봉독 등 모두 합치면 그 수는 배로 증가한다. 그것도 한국교회 내로라하는 지도자급이라는데 할 말이 없다.

이처럼 어느 한 교단이나 단체에서 주도하지 않는, 한국교회의 대표격인 교단과 교회 등이 연합으로 하는 행사일 경우 재정의 불투명 농도가 진하다. 하나의 창구가 있는 것이 아닌, 여러 개의 창구가 있어 더욱 힘이 든다. 결국 해마다 크고 작은 연합 행사는 겉으로는 아름다운 연합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속으로는 컨트롤 타워가 부재한 상황에서 벌이는 행사인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지속될수록 연합 사업은 결국 몇몇 교단 위주로만 흘러가게 된다는 점이다. 신뢰를 잃어버린 연합 사업에 계속해서 동참만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모든 것이 오픈되어 있을 때 비로소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구두로만 투명한 재정을 외치기보다는, 연합 사업의 경우 참여 교단이나 단체 등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재정의 수입과 지출을 명명백백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낱낱이 드러내 공개해야

옛말에 ‘잘하고도 욕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작금의 한국교회 모습이 그렇다. 특히 대사회적인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바라는 마음에서 개최하는 각종 집회와 기도회는 백번 칭찬을 받아도 마땅하다. 어디까지나 그 정신은 누가 뭐라 해도 훼손되지 않는다. 다만 재정 사용에 있어서 투명한 절차를 밟는다면 더욱 효과가 클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과정에서의 수입과 지출에 대한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 액수가 크든 작든 공개하고,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질책보다는 좀 더 개선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함께 고민해야 한다. 만약 특정 부분에 지나치게 과한 지출이 되어 있다면, 왜 그런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두루 살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쓸데없이 많이 책정된 지출을 줄일 수 있으며, 흑자로 남은 부분을 다른 좋은 사역에 쓸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각종 연합사업에 있어 누군가를 세우기 위한 장소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 교단의 크기와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 안에서 이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목소리만 내야 한다. 한 개인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한 목적으로서 연합사업을 이용한다면, 오히려 비난만 받을 뿐이다. 특히 한국교회 지도자라면 더욱 겸손한 마음에서 철저하게 낮은 자의 자세로 섬김의 본을 보여야 한다. 어딘가에 나서기보다는 후배 목회자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혹은 농촌교회 목회자에게 대신 맡겨도 충분하다. 그것이 바로 지도자라면 보여줘야 할 덕목이다.

그리고 더 이상 연합사업에 정치적인 입김이 작용하지 않도록 스스로 자정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간혹 연합사업을 정치적인 수싸움으로 몰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곧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켰다. 예를 들어 한기총과 한교연의 통합 이야기가 오고가는 상황에서, 두 기관이 연합사업을 벌였다고 가정을 하면, 한 쪽에서는 두 기관의 통합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처럼 이야기하겠지만, 반대로 한 쪽에서는 통합은 별개로 단지 하나의 사안에 대한 기도회에 동참한 것일 뿐이라고 발뺌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을 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중간에서 양쪽을 오가면서 흔히 말하는 ‘박쥐’역할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연합사업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을 넘어서,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통합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따라서 연합사업은 어디까지나 한국교회 전체가 하나가 된다는 마음에서 전개해야 한다. 재물을 탐하거나, 자리를 탐하는 연합사업은 퇴출해야 한다. 차라리 부정적인 영향만을 주는 연합 집회나 기도회는 과감히 철폐하고, 작지만 알찬 기도회로 변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각종 연합 집회나 기도회를 통해서 얻은 재정은 반드시 사회로 환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행사를 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통해 얻은 것들을 이 땅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누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가장 확실한 행동이다. 그렇지 않고,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사용되거나, ‘나 몰라라’ 식으로 유용된다면 안 한만 못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부활절 연합예배가 또다사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 해서 손가락질을 당할지, 진정 한국교회의 깨어지고 거듭남의 자리가 될 지는 투명한 재정사용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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