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3월 10일 오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함으로써 파면을 가결했다. 이로써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야기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법적 심판이 92일만에 종결됐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파면 결정은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이며 국민 모두는 이 전대미문의 불행한 역사의 증인으로 남게 됐다.

혼합종교의 왕무당으로 불리며 어린 박근혜의 정신을 지배했던 아버지 최태민과 청와대를 제 집 드나들 듯 하며 사실상 상왕 노릇을 했던 그 딸 최순실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자 첫 부녀 대통령이라는 영예를 한 몸에 안고 청와대에 들어갔던 정치인 박근혜에게 헌정 사상 탄핵에 의해 파면당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안겼다.

지난 12일 주일저녁 TV로 생중계된 전 대통령의 청와대를 떠나는 장면은 4년 전 같은 곳으로 들어올 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심지어 파면된 전 대통령이 이사할 사저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는 바람에 바로 떠나지 않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정도로 여론은 냉랭했다. 결국 대한민국 최고의 통치자의 위치에서 중도에 추락한 박 전 대통령은 모든 예우를 박탈당한 채 권좌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로써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후 대통령의 하야와 퇴진을 촉구하며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돼 매주말마다 서울 도심을 가득 채웠던 촛불집회도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죄 없는 대통령을 종북좌파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며 헌재 판결이 임박할수록 더 기세를 올렸던 태극기집회도 동력을 상실한 이상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주말마다 촛불과 태극기 진영으로 나뉘어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분열과 반목의 장으로 변모했던 광장은 원래대로 평화로운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줄 때가 되었다. 92일간의 탄핵정국의 마침표는 반목과 대결을 접고 화합과 통합으로 나아가려는 국민 모두의 염원에서 방점을 찍어야 한다. 촛불도, 태극기도 실은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같은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정의와 애국은 분리될 수 없으며 이 땅에 보수도 진보도 다 오늘의 민주주의를 꽃피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탄핵 정국 막바지에 어느 한쪽 편에 섰던 한국교회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좌로나 우로도 치우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불의와 불법을 용인하고 두둔하는 편에 가담함으로써 교회 본연의 사명을 망각한 행태는 그 어떤 이유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한국교회가 그 불명예를 씻으려면 이제부터 달라져야 한다. 몇 해 전부터 물밑에서 시작돼 지난해부터 갑자기 급부상한 연합기관의 인위적인 통합작업이 어떤 연유로 또 누구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역사가 곧 밝히 드러낼 것이다. 지금처럼 권력의 눈치나 보며 시녀 노릇하다간 1천만 성도들에 의해 탄핵당하는 꼴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 한국교회는 무엇보다 두 동강난 국민의 마음 속 상처가 응어리로 남지 않도록 보듬고 치유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국난에 비유될 만큼 깊이 패인 골을 메우지 못한 채 국가와 사회를 통합하고, 이전의 구태를 반복하지 않을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이다. 이때야말로 정의와 평화, 화해를 이 땅에 선포하고 실천하는 교회로서 본질을 회복할 적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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