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오스트리아 출신 이론생물학자 루드비히 폰 베르탈란피는 폭력(전쟁)의 근원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내놨다. 인간의 근원적인 특성이 상징화의 능력에 있다며, 전쟁의 근원이 이념 혹은 상징의 충돌이지 생물학적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는 해석이다. 따라서 전쟁은 인간의 공격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결과로, 가장 분명한 인간의 형태가 우리의 상징체계로 나타난 것이다([신이 된 심리학]). 재독 철학자 한병철 역시 유사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적은 우리 자신의 문제가 형태화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의 척도를, 나 자신의 경계를, 나 자신의 형태를 획득하기 위해 적과 맞서 싸워야 한다.”(한병철, [타자의 추방])

음울한 전쟁의 기운이 탄핵 정국의 광풍과 함께 이 좁은 한반도에 소용돌이치고 있다. 미국의 첨단무기를 앞세운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연이어 실시되고, 중국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싸드 배치를 도둑고양이처럼 속전속결로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당장 경제 보복에 들어가고, 점차 수위를 높여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핵개발로 인한 안보 위기 때문에 싸드를 배치한다는 데, 중국은 한반도의 안보가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겁박한다. 이 좁은 땅 안에서 한‧미․일 해양세력과 북‧중‧러 대륙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형국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 끝이 어디일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적에 대한 우리의 상징체계가 교조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여기에 국가 안보를 절체절명의 생존문제로 의제화한 정략적인 애국주의가 스스로 불구덩이를 만드는 형국이다. 즉 적에 대해 절대화된 우리의 상징체계를 앞세워, 당장 적을 막기 위해 취하는 모든 행위는 정당하며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베르탈란피에 의하면 적은 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이념과 상징체계가 만들어낸 대상이다. 따라서 적과의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징체계를 바꿈으로서 피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대한민국 집권세력이 그럴 의지는 보이지 않고, 오직 무력에 의한 응징 한 가지 길로만 달려가는 데 있다. 정략적인 애국주의가 지금 한반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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