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지금 모든 TV가 9시에 삼성동 자택을 나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분주하다. 주요한 뉴스이기도 하지만 온통 씁쓸한 분석 기사로 가득한 오늘 아침은 가슴 답답함을 안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 세월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 전 대통령들의 검찰출두 장면이 겹치면서 도대체 왜 우리의 헌정사는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하는 자괴감을 감출 수 없다. 왜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이 험한 일들이 우리에게는 이렇게도 자주 일어나는 것일까?

제왕적 대통령도 좋고, 분권형 대통령도 좋다. 그렇지만 필자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흥망과 호불호가 결코 제도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류의 정치역사 이래로 최선의 제도는 있었지만 절대적 제도는 없었다. 그 제도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제도를 운영하는 정치인들의 윤리 의식에 달린 것이다. 비록 최악의 제도라도 그 제도를 운영하는 권력자의 의지가 선하면 그 최악의 제도가 최선의 결과를 나타내고, 그 수혜자는 그 권력 앞에 서 있는 평범한 국민이다.

지금 온통 정가의 핵심 주제는 대통령 선거와 더불어 개헌 문제다. 사실 지금의 헌법이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고 시대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음이 분명하기에 개헌에 대해서는 명분도 있고 시기도 적절하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리고 지금 민주당을 제외한 3당이 대통령 선거와 개헌투표를 병행하고자 하려는 시도에도 굳이 반대할 의사도 없다. 실제로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민주당이 동의하여 국민투표에 따르는 엄청난 행정적 재정적 부담을 줄이는 것도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문제는 권력과 권력의지를 가진 개인과 정당의 윤리성이다. 그들의 윤리적 변화와 개혁적 의지가 선행되지 않고는 헌법과 제도를 백천번 바꾸어도 결과는 동일하다. 아니 만일 정치인들의 윤리적 혁신이 없는 개헌이라면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내포할지도 모른다. 지금 대선에 도전한 각 정당들의 후보를 합치면 무려 20여명이 넘는다. 얼마나 국민과 대통령직이 가벼워보였으면 차마 입에 올리지도 못할 인사들조차 너도 나도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그 빌미를 제공한 정치권의 오만함과 무능함에 화풀이라도 해야겠다.

국민을 위한 국정 운영에 실패한 권력자들이 헌법과 제도의 허물을 탓한다. 하지만 지금의 모든 정당들은 군사정권 종식 이후로 각각 10년씩 이 헌법으로 정권을 유지해본 사람들이고, 모두 동일한 실패를 경험했기에 국정 운영의 실패에 대하여 상대방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그 실패를 바탕으로 개헌을 추진하자는 취지에 동의하면서 그에 앞서 어떤 형태로든 권력자의 의식 개혁과 혁신을 위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부정부패의 주범은 선출직 공무원이다. 그들의 권력이 비대하면 비대할수록 탈선의 강도와 깊이는 더해갔다. 그러므로 권력자들이 가져야 할 윤리의식과 실천의지는 그 사회 투명성과 도덕성의 척도가 되었다. 힘없는 국민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의 탈선하지 않으나, 권력자의 탈선은 망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우리는 다시는 검찰청 포토라인 앞에 선 대통령을 보고 싶지 않다. 개헌도 좋고 사회제도의 변경도 좋고 교육과 복지의 개선도 좋다. 제도의 개선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진정한 개혁의 출발은 의식개혁, 그 중심에 권력자의 의식개혁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국민의 종이니, 심복이니 하는 유치한 미사여구 말고 정말로 가슴에 와 닿는 실천적 변화와 개혁의 의지와 결과물들을 보고 싶다.

이번 대선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지만 이 선거에서 선출되는 이가 또 다시 검찰청 앞에 서는 사태의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오늘 유권자들은 그 무엇보다도 후보자의 지나간 삶의 흔적들이 증명하는 진실성과 도덕성에 가편 투표를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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