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성서와 기독교의 중요한 특징 하나가 죄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서가 사회적인 갈등 속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죄는 사회적인 갈등을 일으킨다. 또 반영된다. 죄는 나에게 저지르는 것이기보다는 상대에게 저지른다. 성서에서의 죄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동양종교인 불교는 인간의 내면적인 어리석음, 욕심, 노여움 등 심리학적 상태가 문제된다. 마음의 집착과 어리석음을 깨치는 것이 최고의 과제다. 그래서 도를 닦고 참선을 하여 무념, 무상의 정신적 자유를 추구한다. 그러나 성서는 다르다. 죄를 규정하고 방지하기 위해 율법(사회적 규범)이 제정되었다. 율법으로 죄를 방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불의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예언자가 나타났고, 하나님나라를 갈망했다.

자신의 심리상태를 문제 삼는 종교에서는 명상과 수행을 통한 자기구원을 내세운다. 분명한 것은 자기 자신의 심리상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 나 죄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죄는 죄를 행한 나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죄가 저질러진 상대방과의 문제이다. 아무리 수행을 하고, 명상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죄는 지배와 수탈의 적대적인 관계를 일으키므로 상대의 용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화해가 이루어지고,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 일본과 한국의 경우를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침략자인 인본은 과거 잘못에 대해서 용을 빌지 않았다. 상대인 한국 역시 용서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해서 일고 있다.

그렇다면 죄의 근원은 무엇인가. 먼저 창세기 3장 1-7절에 나타난 죄의 용어를 신학적, 인간학적인 기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이 성경귀절에 나오는 뱀, 하나님 처럼 된다. 선악을 알게하는 열매, 눈이 밝아져 앞을 가리웠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뱀은 용과 통하는데, 용은 동양에서 상서로운 짐승으로 왕을 상징하고, 서양에서는 악마를 상징한다. 신화에서 뱀은 무시무시하고 낯선 탁월한 존재, 강력한 힘을 가진 거대한 세력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은 자기를 절대화 하는 자기중심적인 존재, 권력과 소유를 독점하는 존재로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는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기준을 자기중심적으로 설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눈이 밝아져 앞을 가리 웠다는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 즉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반성할 수 있는 존재로 되었음을 의미한다.

일반 동물은 욕망 자체가 자연적, 본능적으로 규제되어 있다. 성적 욕망도 발정기에 한정되고 소유욕도 필요한 거쳐와 식량에 한정된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중심성과 지능에 결합되고 거대한 본능의 힘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됨으로써 소유욕 또는 독점욕이 무한히 확대될 수 있게 되었다.

이 소유욕과 독점욕은 집단적으로 실현되어서 지배와 수탈의 구조를 형성했다. 일단 이런 사회구조가 형성되면, 이 사회 구조는 인간의 소유욕을 상승시킬 뿐만 아니라, 강요한다. 인간자체는 선한데, 사회가 인간을 망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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