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규 목사] 그날을 잊지 말자! 용서하지 말자

2018-02-22     강동규 목사
▲ 강 동 규 목사

3월1일 만세운동은 서울 이외에도 전국 면, 리 단위에서도 일어났다. 서울에 유학했던 학생들이 동맹휴학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교회의 조직을 이용해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3.1운동이 전국으로 번져나갈 수 있었던 동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삼일만세운동을 한국교회가 높이 평가하는 이유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이화학당의 유관순이었다. 그녀는 만세운동을 고향인 천안 병천으로 옮겨 놓았다. 부모는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죽었고, 자신도 부상을 당했으며, 7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다가 감옥에서 3.1만세운동 1주년을 맞아 만세를 불렀다가 형사의 고문으로 17세의 나이에 옥사했다. 학생들은 고향의 지도급인사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의 거사를 계획했다. 여기에 기층민중인 농업농민과 기독여성, 일반인, 학생들이 참여했다.

민족해방을 위한 기층민중의 봉기는 일본헌병과 경찰의 피비린내 나는 탄압과 학살로 이어졌다. 일본헌병과 경찰의 조직은 강화되었고, 만세운동의 현장에서 무력탄압을 서슴지 않았다. 한민족의 3.1만세운동은 비폭력 민족운동이었다. 일경과 일헌은 경기도 화성군 제암리 마을 주민들을 교회당에 몰아넣고,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3.1만세운동으로 전국에서 7천 3백여명의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이렇게 3.1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번져 나갔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바로 교회이며, 기독교인들과 가난한 기층민중들이었다.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과 지주들은 대부분 뒷짐을 지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일본경찰과 헌병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3.1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된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기독교인 16명도 일제말 일본의 황민화와 우민화 정책에 쉽게 동화되었다. 그리고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해 주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이들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기보다는, 마치 이들이 3.1운동의 주체인 것처럼 비호해 왔고, 오늘도 비호하고 있다는 사실.

일본의 만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있어 3.1만세운동은 잊을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다. 한국개신교회는 더욱 그렇다. 일본 아베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계속되는 망언,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 등은 3.1만세운동 99주년을 맞은 한민족에게 있어 참담하다. 이들을 비호하는 세력 역시 기독교 지도자이다.

일본의 파렴치한 모습은 인간의 탈을 쓴 금수의 짓을 저지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일본의 정치인들이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자신들의 만행에 대해 반성하기보다는, 또 다른 침략을 위해 군국주의 부활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일본의 우경화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는데도,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일본의 만행에 대한 심각성을 모른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지도층 인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을 정당화 해 주는 인사들까지 나타나 한민족의 자존감마저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아베는 역사를 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내정간섭도 서슴치 않는다.

일제에 의해 짓밟힌 이 나라 이 민족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운동이 3.1운동이었다면, 이 운동의 중심에서 죽임을 당한 이 땅의 여성들과 밭은 갈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기독농민, 식민지 민족을 아파했던 학생 등 순교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 식민지 아래서 한민족은 정치적 자유, 종교적 자유, 경제적 자유, 문화적 자유를 잃어버렸다. 한국개신교를 비롯한 천주교, 불교 등 모든 종교는 일본 종교에 동화됐다. 특히 개신교는 일본 국가주의에 굴복,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등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 굴욕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한국교회는 굴절된 역사를 반성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예장 개혁선교 부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