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사역과 미래를 내다보는 점과 무엇이 다른가(?)
“‘기독교인 중 30%가 점집에 가봤다’는 통계가 있다. ‘일단 이 30%만이라도, 점집에 가지 않도록 해도 유의미하다’고 본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 이영훈 목사는 2025년 3대 실행계획을 밝히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이 목사의 지적은 기독교인이 일반적인 점집에 가는 것만을 통계로 내놓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교회 교인 대부분은 샤머니즘적 미신이나, 사주팔자를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당수의 기독교인은 예언, 은사, 통변, 치유 등에 심취되어 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샤머니즘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 및 부흥사들은 에언, 은사, 치유 등을 내세워 집회를 인도해 왔고, 인도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들이 말하는 예언과 점치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한국교회는 샤머니즘적인 부흥회와 목회를 해야 부흥사로서, 예언사역자로서 인정을 받는 세태가 되었다. 샤머니즘적인 교회가 부흥을 해 왔고, 샤머니즘을 빼 놓고서 한국교회를 말할 수 없다. 샤머니즘에 빠진 교인들을 광신도라고 말한다. 교인들의 샤머니즘적인 신앙은 보편화되었고, 이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샤머니즘에 빠진 교인은 신앙과 믿음이 충만하고, 여기에서 이탈한 교인은 신앙과 믿음이 없다고 말한다. 사실 일부 부흥사 및 목회자는 예언과 성령을 교인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방편으로 삼고 있다. 이들은 성령을 방매해서 밥을 먹고 사는 사이비이다. 성령을 헌금을 거둬들이는 방편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성령만을 강조하는 목회자 및 부흥사는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데 안타깝다. 교인들을 향해 무조건적으로 “성령 받으라”고 한다.
예배에 대한 경건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무형의 활동력이 아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근심하는 분으로서, 성부, 성자와 함께 성삼위일체인 근본 하나님이시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시대를 초월하여 늘 하나님 백성과 함께하며 역사하셨고 2000년 전 예수님으로 성육신하셨다.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성령이 나타나셔서 인류에게 생명수를 주신다”고 예언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성령’과 ‘축복’을 내세워 교회를 성장시켰다는 것에 대해서 부인할 수 없다. 성령을 샤머니즘적으로 이용해 왔다. 한국교회는 성령을 내세운 광신적인 신앙을 뜨거운 신앙이라고 했다. 일부 목회자와 부흥사들이 말하는 예언과 성령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예언자들의 예언활동과는 전혀 다르다. 구약시대 예언자들은 민족이 타락하면,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징계를 경고했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선교사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정교분리정책’을 철저히 수행하면서, 예언, 축복, 성령을 방매하기에 바빴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 구약성경을 보지 못하도록 했고, 구약성경을 본문으로 한 설교를 철저하게 금했다. 이를 어기는 교인은 교회에서 추방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서도 피압박민중인 기독교인들 사이에 민족의식이 작게나마 살아남아 나라의 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한 운동을 일으켰다.
한국선교초기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 아서 브라운 박사는 영미선교사들의 선교형태를 목도하면서, 자신이 쓴 <극동의 지배>에서 “영미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하는 한국교회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샤머니즘화 되어가는 한국교회 교인들을 걱정했다. 영미선교사들의 교파주의를 그대로 받아드린 한국교회는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교인들을 샤머니즘에 빠져들게 했다.
오늘 한국교회는 ‘성령’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성령을 샤머니즘적, 광신적으로 악용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여기에서 벗어난 교인의 신앙은 “믿음의 크기가 작다”는 말을 듣고, 샤머니즘적, 광신적인 교인은 “믿음이 크다”고 평가한다. 또한 샤머니즘적이면서, 광신적인 교인은 “하늘의 상금이 크다”는 말도 듣는다. 오늘 교인들이 예언과 통변, 잘못된 성령이해에 삐져들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보니 일부 교인들마저도 예언 및 치유활동에 참여하며,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다. 문제는 이를 목회자가 응원하며, 부추긴다는데 참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