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손가정, 부모 이혼·사업실패로 급증

5월 가정의달 특집(2) - 힘겹게 살아가는 농어촌의 조손가정을 점검한다

2025-05-20     유달상 기자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어린이 증가

중소도시의 초등학교는 해마다 학생 수가 줄어 학생들이 한 학년씩 올라갈 때마다. 한 학급씩 줄어든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그것은 어렸을 때는 자녀를 할어버지·할머니에게 맡겨 키우고, 고학년이 되면 직접 키우겠다며, 데려가기 때문이다. 부모의 이혼, 사업실패 등으로 어린아이와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조손가정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5월 가정의 달 무너져가는 대한민국 가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평생 자녀들을 위해서 헌신한 어르신들이,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름다운 황혼의 삶을 영위해야 할 어르신들이, 오히려 자녀들이 짐이 되고 있다. 사업의 실패, 자녀의 이혼 등으로 인해 어르신들은 손자를 부양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들을 위한 지원방안도 그리 많지 않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르신들은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정부의 영세민지원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남극의 펭귄들이 매서운 칼바람이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관심,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맨 앞에 서서 바람막이 역할을 하던 펭귄이 지치면 뒤로 물러서고 그 다음 펭귄이 다시 바람막이가 되어 준다. 펭귄의 모습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랑과 배려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동정만 있을 뿐, 진정한 사랑과 배려는 펭귄들만큼 진하지 않다.

오늘 우리사회는, 특히 기독교인들은 이웃을 사랑한다면서, 사랑과 배려하는 마음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사회적 갈등, 이념적 갈등, 세대 간 갈등, 노사 간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모두가 욕심쟁이가 되어 자신과 가족만을 섬긴다. 이로 인해 소외된 사람들의 삶은 곤궁할 수밖에 없다.

어르신과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5월은 특별한 달이다. 대부분의 가정은 5월 가정의 달에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 웃음꽃을 피우며, 그동안 있었던 안부를 전하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소외된 이웃들은 그 흔한 선물꾸러미 하나 받지 못한 채, 쓸쓸한 가정의 달을 보낸다. 간혹 동네 마을자치와 종교단체가 마련한 어버이날 효도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고작이다. 도시에 나가 찾아오지 않는 자식을 그리워하고, 원망하며, 자식이 맡긴 손자를 끌어안고 그리움을 달랜다.

교회, 조손가정의 아이들의 돌봄 센터로 최적
농촌교회와 도시교회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독거노인 아닌 독거노인

5월 가정의 달 한 조손가정의 이야기는 외롭게 살아가는 농촌의 어르신들의 마음을 더욱더 아프게 만든다. 한 시골마을에 여러 대의 고급 승용차가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일가족은 선물꾸러미를 한 아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김모 할아버지(85)좋겠다. 도대체 우리 자식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라며 한숨을 내쉬며, 찾아오지를 못하는 자식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자식은 장성해도, 어린아이와 같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식이 있으면서도 몇 년째 독거노인이 아닌 독거노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김 할아버지는 5월 가정의 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유난히 야속하기만 하다. 더욱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김 할아버지에게는 인근에 사는 딸이 있지만, 가정형편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아들의 사업실패 이후, 몇 년째 소식조차 없어 항상 자식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손자와 함께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자식이 김 할아버지에게 짐이 되고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영식(10·가명)이도 친구들이 친척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자랑할 때마다 그저 부럽기만 하다. 영식이는 친구들에게 이번 어린이날에 우리 엄마·아빠가 오실거야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부모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없었다. 3년 전 시골로 내려온 이후 엄마, 아빠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영식이는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가 속상해 할까봐 내색조차 할 수 없다. 마음속으로만 엄마, 아빠를 그리워하며, 55일 어린이날을 보냈다.

막노동 등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김모(49)씨도 지난달 일한 품삯을 받지 못해 가족들과 쓸쓸한 5월 달을 보내야만 했다. 두 어린 아들과 3명이 살고 있는 김씨는 아이들에게 당당한 아빠가 되기 위해 가난을 탓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매번 가난이 죄라는 현실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김씨는 아이들과 약속한 운동화를 어린이날 선물도 사주고, 큰 형님 집에도 가야 하는데, 지난 3-42개월 간 막노동판에서 일한 임금 3백여 만 원을 받지 못해 죄인의 심정으로 아이들을 설득해야 했다.

가난 때문에 작아지는 부모

독거노인, 조손가정의 아이들, 가난이 죄인 어려운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 그리고 배려이다. 독거노인과 조손가정의 아이들은 자식과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 그리운 것이고,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빈민들에게는 노동의 대가를 제때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들에게는 값싼 동정이 아니라 펭귄처럼 더불어 사는 사랑과 배려, 관심이 필요이다. 힘겹게 살아가는 독거노인 중에는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다.

소외된 사람들도 사람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농촌교회와 사회단체 그리고 행정기관은 고민에 빠졌다. 고민을 하면서도 이들을 지원할 재정과 예산은 여의치 않다. 오늘 대한민국은 제21대 대통령선거가 한창이다. 후보들 입에서 차상위 계층을 위한 공약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도 다행인 것은 농촌교회의 목회자와 사회단체들이 건강한 농촌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재정적인 지원이 뒤따르기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 앞에 절망만 앞선다. 그럼에도 일부 교회와 단체는 주어진 상황에서 소외된 이웃과 함께 보다 생명력 있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을 그대로 놓아두고서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는다. 미래로 나갈 수도 없다.

어르신들과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홍원침례교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의 선교를 실천 할 수 있다. 이 교회가 사랑의 선교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교인들의 목회자의 목회계획을 이해하고, 적극 지원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교회의 제직자들은 노력 봉사 또는 재정적인 지원으로 벼랑 끝에 서서 눈물과 한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어르신들의 황혼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 교회 담임 목사의 말이다.

교회는 농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양로원으로 변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벼랑 끝에서 내일이라도 자식들이 찾아오겠다는 작은 희망을 기대하고 살아가는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실천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처음 농촌목회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부임했다. 부임해서 힘겹게 살아가는 어르신들을 묵도하고,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제일 먼저 생각해 낸 것이 혼자 살아가는 어르신들에게 밑반찬을 배달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발전하여 어르신과 교회 그리고 지역사회와 자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도하게 됐다. 농촌교회도 희망이 있다. 독거노인 아닌 독거노인 있는 한, 고향으로 낙향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한, 부모의 이혼에 의해서 버려지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 한,말이다

오늘날 농촌교회는 어르신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어린이문제, 빈농, 환경문제 등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래도 노인들의 문제는 사회복지지원이 충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고, 교회와 사회단체들이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행스럽다. 그러나 부모의 이혼과 사업실패로 인해 부모들에 의해 할아버지·할머니들에게 맡겨진 아이들의 처지는 심각하다. 아이들과 하께 살고 있는 어르신들의 생활 또한 힘겹기는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조손가족들은 자녀들의 사업 실패로 인해 재산을 매각해, 하루하루의 생활이 힘겹다. 여기에다 한창 잘 먹고 공부해야 하는 아이들의 교육비와 간식비를 부담할 처지도 못된다. 사회복지사들은 조손가정의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로 교회를 꼽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촌교회들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목회자부인 방과 후 어린이학습지도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교회의 목회자 부인은 소외된 아이들을 교회로 불러들여 방과 후 학습을 지도하고 있다. 농촌교회 목회자들은 도시교회의 도움 없이는 생활은 물론이고, 소외된 이웃들의 윤택한 삶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없다. 도시교회들은 계속된 마이너스성장과 마이너스재정으로 인해 농촌교회 지원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도시교회의 십자가 탑은 계속해서 높아가고 있다.

또 교회의 대지는 계속해서 주차장 구입이라는 명분아래 넓어지고 있다. 금년도 한국교회의 1년 예산이 22조원을 넘는다고 추정한다. 20조원 중 최소 10%만이라도 농촌지역의 소외된 사람과 도시의 소외된 이웃들의 복지 선교비로 환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래 전부터 한국교회 안에서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욕심쟁이가 되어 자신과 가족, 자신이 섬기는 공동체만을 위해 일하며, 충성한다. 사실 한국교회는 선교 140년 동안 교회재산 증식과 바벨탑을 쌓는데 급급해 있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벼랑 끝에서 아우성치는 농촌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교회가 되겠다는 목소리는 건의 들리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5월 가정의 달, 힘겹게 살아가는 조손가정, 소외된 이웃을 그대로 두고서는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할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한국대학생선교회 등 청년선교단체와 도시교회들이 자비를 들여 농어촌지역 교회 여름성경학교와 농촌일손돕기운동을 벌여, 기독교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다. 농촌교회들이 소외된 이웃을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 사이, 도시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은 호텔의 호화로운 모임 등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도시교회 목회자들이 호화로운 호텔모임을 한번만 안 가져도 농어촌교회 1곳의 1년 프로그램을 지원 할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일부 농촌교회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농업농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선교정책을 개발, 농업농민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마디로 농촌교회의 목회자들은, 고령의 어르신들이 교회를 희망으로 보듯이, 농업농민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 위로하고, 농업농민들에게 5월 새 봄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여는데 교회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길이 아니겠는가.

요즘 과거 도시교회와 농촌교회가 상생하는 도농공동체라는 말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농촌목회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지 오래되었다. 농촌교회를 잠시 거쳐 가는 임시정류장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목회자들은 농어촌을 자식, 부모 또는 친구처럼 사랑과 관심을 갖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소외된 땅의 사람들에게 다가설 때, 그리움으로 사무친 소외된 이웃의 공허함이 조금이나마 치유되고, 사회생활에 큰 원동력으로 승화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