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교수] 나는 왜 글을 쓰는가-예수의 복음 언어 100번째 글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The King of Kings, 감독 장성호)》가 국내에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지난 4월 미국에서 첫 선을 보인 이래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뛰어넘어 820억의 매출을 기록하며 북미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영화는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의 원작인 <우리 주님의 생애(The Life of Our Lord)>를 바탕으로 진정한 왕인 ‘예수’를 주제로 만들어졌다.
장성호 감독(삼일교회 집사)은 10년 동안 투자를 받지 못해 포기하고 싶었지만 “고난이 축복”이라는 송태근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신앙의 힘으로 대작을 완성했다. 그가 영화 투자를 위해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너는 훗날 천국에 와서 내가 ‘너는 뭐하다가 왔느냐’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래?”라는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어 답했다. “하나님, 제가 한 명도 전도하지 못했는데 영화를 완성시켜주시면 10년만 판권을 소유하다가 그 후에는 무료로 배포하여 전도용으로 사용하겠습니다. 전도하다가 주님 곁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 투자가 쇄도하여 드디어 기독교 영화로는 보기 드문 성공을 이루었다.
목회의 본질은 ‘복음과 문화의 공존’이다. 목회는 ‘복음’이라는 내용을 ‘문화’라는 그릇에 담는 사역이다. 복음은 목표며 문화는 방법이기에 방법이 목적을 배신하면 무의미하다. 헬라파 유대인들처럼 복음은 없어지고 문화만 남으면 복음은 생명력이 없어진다. 목회자는 어린 시절 어떤 문화의 프레임(Frame) 속에서 지냈는가가 중요하다. 어떤 문화에서 성장하고, 누구의 설교를 듣고 자랐으며,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목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복음(Text)과 현장(Context)이 합쳐진 ‘기독교 문화화’를 이루어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다.
목회는 말과 글로 짓는 복음의 솥밥이다. 뜸을 잘 들여야 맛과 영양이 좋듯이 기다림의 뜸, 광야 고난의 뜸, 용서와 관용의 뜸을 들여야 복음의 솥밥이 제대로 지어진다. 아브라함과 노아, 모세와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을 말과 글로 받고, 수용하며 체험했다. 또한, 말과 글로 언약의 성취를 맛보았다. 예수는 말로 천국을 설파하며 제자들을 양육했다. 십자가상의 칠언(七言)도, 마태복음 28장의 지상명령도 ‘말’이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 십자가와 부활을 말로 전했으며 하늘의 복음을 글로 남겨 신약성서의 절반을 이루었다.
읽기와 쓰기는 직관적 통찰력, 사고의 깊이, 고차원적 문해력,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준다. 특히, 글은 말문을 여는 이성적 언어다. 감정은 순간을 흔들지만 논리는 마음을 움직인다. 감정은 사라져도 논리는 설득을 지속시킨다. 논리적인 글은 메시지를 오래 기억하게 하며 선명하게 하는 힘이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로고스는 신뢰를 설계하고 설득과 감동을 창조한다. 말과 글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3요소인 ‘에토스’(신뢰), ‘파토스’(감정), ‘로고스’(논리)의 토대가 된다. 말과 글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신령한 도구다. 글쓰기와 말하기는 목회의 기초다. 설교자의 말과 글이 복음화와 문화화를 이루면 성도들의 눈과 귀에 닿는 순간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 42:5)라는 욥의 고백으로 승화된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기며 각종 백일장 대회에서 입상했다. 결국 문학을 전공하여 강의를 밥벌이의 수단으로 삼아왔다. 30년 이상 문학, 언어학, 논술, 글쓰기, 면접, 수험영어 영역을 넘어서 자기계발 분야에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나이 먹을수록 갈증과 허기가 심해졌다. 영생의 진리인 복음의 진수를 글로 옮기며 강단에서 말과 삶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싶었다. 그래서 늦은 나이지만 M.Div.과정을 밟으며 후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말과 글은 복음의 그릇인 문화의 본체이면서 나에게는 은사이자 소명이며 사명이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소리를 선별하여 이 시대의 언어로 현재를 재해석하고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재창조하기 위해서”라고. 나에게 글쓰기는 예수가 땅에 쓴 글씨로 간음한 여인에게서 회개를 이끌어내는 자전적 정화 사역이며 사도 바울이 옥중서신에서 강조하는 ‘일상적 영성’의 기록이다. 본지의 <예수의 복음 언어>는 이러한 기조에 바탕을 두고 예수 복음으로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예수행전으로 지속될 것이다.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말이다. 다만 소음이 아닌 바른 소리로 기억되어진다면 더 이상 바랄 일이 없다.
본지 논설위원/ 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