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자·중재자의 역할에 충실한 하나님의 사람 되자”
광복 80주년 특집 … 신자유주의 경제적 사고에 종속되어 버린 한국교회와 세계를 진단한다
윤리와 도덕을 우선하는 문화강국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백범 김구 선생이 갈망했던 문화강국에 대한 꿈을 꾼다. 생명의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 대한민국, 대다수의 국민이 로마팍스(힘의 의한 평화)를 외치는 대한민국은 과연 선진국이고, 문화강국인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여름 폭염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택배노동자, 외국인노동자, 일일노동자의 한숨소리만 귓전을 울린다. 살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일하러 나간 노동자가 주검으로 돌아오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이들의 하늘을 향한 호소와 부모에 의해 학대당하고 버림받은 아이들의 ‘한의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고 있다. 경제 한파로 곤궁한 삶을 살아가는 자영업자들의 눈물,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노동자들의 신음소리가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종속된 욕심쟁이들은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혼자만 받겠다고 몸부림치고 있다. 이런 상황서 국민은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자화자찬에 빠져,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호소를 듣지 못하고 있다.
국민 대부분은 경제력(부력)과 군사력(강력)으로 선진국이 되었다고 자만에 빠져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경제력, 군사력 못지않게 윤리적, 도덕적, 문화적으로 앞서가야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 선진국이어야만 세계의 문화를 선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은 일본이나, 미국, 유럽의 나라처럼 최소한 이웃나라를 침략하고, 침략한 식민지 백성들의 것을 빼앗아 부유한 나라가 되지 않았다.
우리의 문화와 도덕, 윤리를 우리 스스로 지키며,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발전시키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12.3 비상계엄도 성숙한 국민들의 ‘빛의 혁명’으로 극복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마다 우리 스스로 극복해 왔고, 극복하고 있다. 문제는 갑자기 드리운 빛 때문에 국민 모두가 장님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욕심쟁이가 된 인간들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모든 물질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수 년 동안 대한민국은 남북한 간에 적대적 관계를 조성하는 등 국가주의에 빠져 있었다. 모두가 안보타령만 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새 정부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남북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에 기대를 거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물질은 없어도, 마음이 평화로웠던 것은 마음에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평화(샬롬)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얻은 평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참 평화를 이루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생명의 존엄과 참 평화를 예수님과 함께 실현하자
“문화의 힘 인간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가 준다”
생명의 가치,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화
예수님의 평화를 말해야 할 한국교회는 오히려 예수그리스도가 없는 평화, ‘로마팍스’,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며, 교인들을 미혹시킨다. 성령을 내세운 참 평화(샬롬)가, 힘의 의한 평화(로마팍스)로 둔갑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원수 된 세상을 하나님과 화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이웃과 화해해야 한다. 이웃나라와 화해하고 중재자, 화해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화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우리는 참 평화를 이루기 위해 예수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피조물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 있는 오늘날 세상은 너를 죽여야만 내가 사는 세상이 되어 변질됐다. 그것은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너의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생명문화, 그것도 인간 스스로 그리스도와 함께 선도해야 한다. 자기희생을 통한 예수님의 생명문화, 그것은 인간사회를 평화로 안내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경제도(부력), 군사(강력)도 아닌 문화강국, 그것도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강국을 꿈꾸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충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소망했다. 김구 선생은 진정한 세계 문화가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실현되기를 갈망했다. 김구 선생의 문화강국론은 무엇보다 생명의 존엄과 소중함을 근원으로 삼고, 모방이 아닌 창의력에 의한 새로운 문화를 갈망했다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큰 의미를 가져다가 준다. 이는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갈 수 있는 길라잡이가 아니겠는가.
70년 전에 김구 선생이 소원한 ‘문화강국론’은 문화적으로 이웃나라인 일본이나, 중국, 서양문화에 뒤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창조적 새로운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데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BTS를 비롯한 아이들 그룹의 음악과 영화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를, 드라마 ‘별 그대’가 중국 본토를 뒤 흔들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전인대회에서 “왜 중국은 이런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는지”에 대해 한탄을 했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참 지도자의 깊은 통찰력을 느끼게 한다. 김구 선생은 식민지세력으로 대한민국에 들어와 국민을 괴롭혔던 일본의 지도자들과는 차별화되는 참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본식민지 아래서 빼앗기고, 강탈당하면서도 군사강국, 경제강국이 아닌 생명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강국을 갈망했다. 한민족 대부분은 김구 선생의 말의 뜻을 이해하기 못했다. 그렇다보니 모두가 경제대국, 군사대국을 노래하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 당시 군대귀신에 의존해 살던 이스라엘 민족은 특히 기득권자들은 예수님을 향해 이 땅에서 빨리 떠나 달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산자의 땅이 아니었다. 죽은 자의 땅이었다. 이러한 유대인의 시온이즘 사상은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불러 왔다. 이 영향 아래 있는 이스라엘은 군대귀신에 의존하며, 오늘도 이웃 국가를 침략하고, 팔레스타인 인종청소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나라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범죄에 저지르고 있다.
시온이즘을 찬양하는 기득권세력과 목회자의 입에서는 번영을 위한 노래, 경제 강국과 군사대국만을 꿈꾸며, 남북한을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는다. 국민들은 불안한 가운데, 경제 한파와 함께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자신의 희생을 통한 생명과 남북한민족의 화해를 위한 노랫소리가 나오지를 않는다. 이런 상황서 제22대 대통령인 이재명 정부가 평화를 말하며, 남북한 민족의 화해를 추구하는 모습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치인·법조인·의료인만 보이는 세상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남북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 예수님의 참 평화와 참 사랑을 말하는 국민을 좌파, 빨갱이로 몰아붙인다. 정치인이나, 언론이나, 목회자나 모두가 60만 소수인 부자들을 위한 말 폭탄, 보도를 쏟아 내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예수님의 생명의 현장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연민의 정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늘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군대귀신과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종속된 결과가 아닌가.
일부교회 목회자의 부자들을 위한 기도소리, 반통일적인 언론보도, 부자감세 운운하는 정치인,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협상하는 의료인, 최저봉금을 노동자에 비교해서 몇 배의 임금을 받으면서도, 그것이 모자라다고 아우성치는 귀족노조들은 국민들을 협박하며, 국민들의 삶을 도탄에 빠트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오늘 대한민국은 이들에 의해서 퇴보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지나친 말은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인과 목회자들은 12.3비상계엄으로 촉발된 경제 한파로 자영업자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데, 일용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매일 죽어가는 데, 강도만난 서민들이 죽음에 이르렀는데, 참 생명의 문화를 상실한 청소년들이 힘없는 어르신들을 조롱하는데, 성폭력과 직장 괴롭힘으로 힘없는 국민들이 살해당하고 있는데도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데 참담하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협상하는 의료인의 모습은, 자기모순에 빠진 법조인, 부자들의 머리 위에 축복을 빌어주는 사이비 목회자의 모습은 생명도, 평화도, 사랑도 상실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사고에 종속되어 버린 결과이다. 모두가 경제적 사고에 종속돼 이웃의 아픔, 이웃의 고난을 나의 아픔과 고난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이는 성령이 흐리지 않아 고인물과 같이 썩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그 곳에 가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웃의 아픔에 함께해야 한다는 것은 성서의 진리이며,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대한민국의 노조 역시, 사업주와 마찬가지로 고난당하는 이웃의 아픔을 몰각했다. 분명한 것은 정치인들이 정쟁만 일삼으며, 생명을 위한 법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사이, 힘없는 국민들은 고난당할 수밖에 없다.
기득권자만의 목소리가 들리는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회는 소외된 자, 더 이상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나라는 산자의 땅이 아니다. 죽은 자의 땅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노동자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제3세계 국가의 노동자들은 죽으면서도, 쓰러지면서도 일하며, 다국적기업을 살찌워 주고 있다. 생명의 소중함도, 생명문화도, 종교도, 국회도, 대기업도, 모두 신자유주의 경제적 사고에 종속되어 버렸다.
신자유주의 경제적 사고에 갇혀 사는 인간은 이웃의 고난과 아픔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만 높인다. 지신과 가족,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영광만을 위해서 일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귀족노조와 정치인, 언론인, 의료인, 판검사만 보인다고 말한다. 이들은 60만명의 부자들을 위해서 일하는 모리배이다. 신상득 시인은 ‘하늘이시여’라는 제목의 시에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는 국민들의 삶을 담아냈다. 그리고 경제적 사고에 종속되어 버린 이 땅의 교회, 정치인, 귀족노조, 가진 자를 향해 회개를 촉구했다.
“하늘이시여/중고 아파트 샀다가 가격 세 배 올랐다고/당신께 감사기도 드리는 자/당신은 그 기도가 가당하게 들리십니까?//아파트 판자는 억울함이 가슴을 후비는데/하물며 괴로워하다가 생명줄 놓기까지 하는데/당신은 그 기도 소리가 기쁘게 들리십니까?//아파트 값 세 배 뛰어 큰돈 번 자를 향해/당신이 내린 축복이라 설교하는 자/이 자의 허튼 목소리가 당신의 음성입니까?//아파트 판자에게 미안스러워 하고/그 미안함에 일부 장학금이라도 내놓는 자//이런 뜻이 당신이 일깨우는 진정한 사랑 아닙니까?//주식 거래로 큰돈 번 자의 감사기도/축구 경기에서 골 넣은 자의 감사기도/당신은 이들의 기도가 참으로 갸륵하십니까?//주식 잃고 골 먹은 자는/그 아픔과 좌절에 휘청거리는데/당신은 저들의 기도가 과연 흐뭇하십니까?//하늘이시여/예수 믿고 천국 가겠다는 자/그리해야 한다고 소리치는 자/당신은 이들의 뜻이 썩 좋아 나무랄 데 없습니까?//가족 이웃을 불구덩이에 놓아두고/믿는 자만이 홀로 걸어가는 곳/그곳이 당신이 만든 눈물 없는 천국입니까?//사랑하는 남편 아내 자식 팽개치고/믿는 자만이 홀로 영원토록 머무는 곳/그곳이 당신이 만든 기쁨 넘치는 천국입니까?//자신은 천국 가면서 지옥 가는 남편 향해/믿으랄 때 믿었어야 한다고 힐책하는 아내//그런 자가 가는 곳이 당신이 만든 천국입니까?//믿지 않아 지옥 가는 남편 대신해/지옥행 자처하며 남편 천국 발원하는 아내/천국은 그런 자들에게 열려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어둠을 사랑하는 것은 뒷전이고/당신을 믿어 천국을 가려고 골몰하는 마음/천국은 그런 무지막지한 욕심쟁이에게 닫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하늘이시여/감사에 앞서 누군가 아픈 사람 없는지 돌아보게 하시고/당신을 믿는다는 외침보다 사람을 사랑하게 하시고/자기구원보다 이웃구원에 목말라 하는 지혜 품게 하시어//이제는 우리가/당신 닮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가장 간절한 기도가 되게 하소서/가장 버젓한 용기가 되게 하소서/가장 훤칠한 긍지가 되게 하소서”
하늘을 향한 이 기도는 얼마나 처절한가. 오늘 한국교회는 신자유주의 경제적 사고에 종속된 나머지, 설교시간 마다 악마의 금전, 돈!돈!돈! 만을 외치고 있다. 교회당 안에 십자가는 없다. 교인들 역시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 모두가 지상의 삶은 어찌 되었건 예수 믿고 하늘나라에 가겠다고 기도한다. 심지어 편법으로 부자 된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한다. 목회자는 큰돈을 번 자의 머리에 손을 얻고 축복해 준다.
교회는 이들만의 교회가 되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다. 모두가 경제귀신에 걸려 맘몬만을 찬양하며 바벨탑을 쌓는다. 하나님의 참 사랑을 찾아 볼 수 없다. 모두가 예수님시대와 마찬가지로 경제귀신 군대귀신은 교회 내에서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다. 교회는 죽은 자의 교회가 되었다. 생명력도 잃어버렸다. 생명의 가치보다 돈의 가치를 우선하는 교회가 되었다. 신의 자리는 돈으로 대치됐다.
이제라도 교회는 소외되고 가난한 교인들이 들어 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교회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파, 율법학자, 유대인들은 군대문화와 경제문화에 길들여져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인 예수 그리스도를 몰아내려고 했다. 그렇다보니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 잃는 백성으로 유리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귀신과 경제귀신을 몰아내자
군대귀신, 경제귀신에 걸린 인간은 바다에 빠져 몰살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성서는 분명하게 교육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적 사고에 기독교를 종속시켜 버린 한국교회는 교인들과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어야 함에도, 사구려 복음, 성령을 방매하기에 바쁘다. 하나 남은 속옷까지 빼앗아 버리는 것이 목회자이다. 한국교회는 자신의 욕심과 탐욕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경제력과 군사력 때문에 선진국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대한민국은 김구 선생이 그렇게도 원했던 문화의 힘 때문에 강대국이 되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감각, 이웃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는 감성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었다. 자기희생을 통해 원수를 친구로 만들었다. 교회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참 평화와 참 사랑, 화해를 위해서 세워졌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성령 충만해야 한다. 그의 십자가를 통해 분단된 이 땅에서 참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참 평화를 위해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아프간 미라클 작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이 이웃의 생명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은 자기만을 생각하고, 죽음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오늘날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형태를 보면, 그것은 극명해진다.
36년 동안 대한민국을 침략하고서도, 그것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 노무자와 학도병으로 끌려간 이 땅의 청년들에 대해서 사과 한마디 없다. 일본에 선한 것을 기대한 대한민국 국민이 잘못이다. “천황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의 정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명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일본, 물질에 사로잡혀 망 할 수밖에 없고, 망해 가고 있다.
일본의 악을 경험하고서도, “아베님 잘못했다”, “일제 때 대한민국 국민의 국적이 일본이다” 등을 말하는 국민이 있는 한 대한민국은 선진국에 들어설 수 없고, 미래로 나갈 수 없다. 그것도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시궁창보다도 못한 삶을 산 이 땅의 소녀 앞에서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는데 참담하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상실한 일본은 아프간서 한사람도 구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일본과 대한민국의 문화적 차이이다.
일본을 극찬하며, 일본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이 땅의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 학자들은 생명을 존엄성을 상실해 버린 인간들이다.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인 이들은 예수님 당시 귀신에 걸려 바다에 머리를 박고 몰살당한 돼지처럼, 경제귀신, 군대귀신에 걸린 사람으로 바다에 머리를 박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며, 성경의 진리이다. 우리 모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일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