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교수] 넷플릭스는 교회에 무엇을 묻고 있는가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케데헌)>의 돌풍이 화제다. 미국 소니 픽처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넷플릭스를 통해 조회수가 2억 1050만 회(8월 20일 현재)를 넘었다. OST ‘Golden’은 미국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했다. 영화에는 전통 한국 문화와 현대 서울의 명소들이 배경으로 등장하며 참신한 소재, 신선한 K-POP 음악, 화려한 연출이 돋보인다.
영화는 세 명의 여성 K-POP 아티스트로 이루어진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가 악령인 ‘보이즈’로부터 우리 민족을 지키는 싸움이 주를 이룬다. 헌트릭스는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무당 가문 후계자들이다. 이는 K-POP을 매개로 무속이 한반도 민중의 삶을 지키는 전통적 한국 문화라는 것을 시사한다. 영화는 K-문화의 확장성과 세계화라는 긍정적인 효과가 상당하다. 하지만, 무속이 우리 민족을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해주는 종교라는 메시지는 우려할 만하다.
《한국교회 트렌드 2025》(지용근 외, 규장, 2024)는 2025년 키워드로 ‘유반젤리즘(You-vangelism)’을 제시했다. 이는 유튜브로 원하는 기독교 콘텐츠를 시청하며 신앙을 유지하는 스타일이다. 조사에 의하면 교인들의 신앙에 도움을 주는 요소로 최근 10년 사이 ‘출석 교회 예배와 목사 설교’는 64%에서 28%로 감소한 반면, ‘미디어’는 1%에서 19%로 크게 증가했다. 기독교인이 자주 이용하는 콘텐츠로는 ‘설교(59%)’와 ‘찬양(53%)’, ‘성경공부(23%)’, ‘성경읽기(23%)’ 순으로 나타났다.
《넷플릭스가 삼켜 버린 기독교》(홍광수, 세움북스, 2025)는 ‘콘텐츠 중독 시대, 교회는 무엇을 잃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을 ‘유사 신(神)’으로 규정하면서 기독교가 넷플릭스와 OTT 플랫폼에 빠지면서 사유(思惟)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진단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소비자의 역할에만 머무르며 주일에만 교회에 나가는 ‘선데이 크리스천’과 교회 의자를 엉덩이로 따뜻하게 데워 주는 ‘벤치 워머(bench warmer)’에 국한되어 있다고 질타한다. 동시에, 미디어를 복음 전파의 ‘창의적인 언어’로 활용하여 교회가 잃어버린 문화적 상상력을 회복하자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는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30여 년 전 사회보장제도가 하나님을 대신한 유럽 교회와 흡사하다. 넷플릭스는 재밌고, 유튜브 쇼츠는 짧지만 강렬하다. 반면에, 목회자의 설교는 길고 지루하며 무미건조하다. 여기서부터 2030 세대가 교회를 빠져나간다. 유명 가수의 트로트는 일부 영감 없는 목사의 설교보다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 세상의 문화가 빠르게 진보할 때에 한국교회는 상대적으로 정체되었다. 그 기저에 교권과 물량주의, 종교 장사, 자기 숭배주의가 있다. 정말로 “넷플릭스가 기독교를 삼켜버린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두 가지 거시적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의 소셜 네트워크의 미디어 전략을 새롭게 짜야한다. 교회는 소셜 네트워크의 역기능을 경계하며 순기능에 근거해 교인들의 신앙 성장과 국내외 선교를 위한 혁신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AI 기반의 구제·봉사·선교 정책을 개발하고 SNS 미디어를 활용한 다음세대 리바이벌 OTT 전략이 시급하다. 또한, 지역과 직장의 현장으로 들어가 소외계층을 조건 없이 돕는 ‘예수 동행’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한다.
둘째, 신학의 사변화(思辨化)를 지양하고 목회자의 설교가 새롭게 중생해야 한다. 강단 위의 설교자는 적어도 넷플릭스의 작품을 연구해야 한다. 이를 설교에 반영하여 회중들의 삶에 적용함으로 복음의 범위를 확장시켜야 한다. 창의적 설교자는 철 지난 소재와 고리타분한 잔소리, 감동 없는 신변잡기의 삼류 설교를 피한다. 대신에, 소셜 네트워크 친화적 목회와 참신한 소재에 의한 영감과 감동을 안겨주는 설교를 위해 매일 혁신한다.
내가 말씀을 지키는 게 아니라 말씀이 나를 지켜준다. 내가 교회를 지키는 게 아니고 예배와 설교가 나를 지탱해준다. 목회와 설교는 교인들에게 ‘오늘의 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칼 바르트의 “한 손에 성경(text)을, 나머지 한 손에 신문(context)을”과 일맥상통한다. 성경은 복음의 ‘날줄’이고, 시대는 복음의 ‘씨줄’이다. 복음 설교의 회복이 날줄이며 소셜 네트워크의 선용이 씨줄이다. 이 날줄과 씨줄을 바르게 엮는 작업이 곧 목회이자 설교다. 목회와 설교는 죽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고 복음을 선포하면 깊은 고통의 바다 밑에서도 영혼은 반드시 응답한다. 더욱이 미디어를 잘 활용하면 그 효과는 배가된다.
본지 논설위원, 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