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교수] 떠난 자와 남은 자의 교회
삶이 힘들어 자살을 결심한 한 청년이 목사를 찾아갔다. 청년의 설명을 들은 목사가 말했다. “들어보니 죽을 만하네. 나 같아도 그러겠어. 그동안 사느라 고생 많았네. 그럼 죽어야지”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이왕 죽을 거 내가 하는 일 한 가지만 도와주고 죽게나.” 목사는 저소득층을 위한 자립 주택 짓기 운동인 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의 주창자였다. 청년은 한 달 동안 그 일을 돕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다시는 죽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다. 목사님이 돈을 줬거나 장황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설교했다면 저는 이미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어요. 함께 일하면서 행복했습니다.”
미국의 정신분석과 의사인 칼 메닝거(Karl Menninger 1893~1990)에게 기자들이 물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대답은 이러하다. “지금 집 밖으로 나가서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헌신적으로 도와주라.” 유명 병원이나 의사를 찾아서 치료만 받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헌신하라는 것이다. 봉사와 헌신은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5무 교회가 온다》(저자 황인권, ikp, 2025)라는 책이 화제다. ‘십자가 없는 MZ교회의 등장’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부제의 이 책은 ‘5무(無)’ 교회라는 특이한 현상을 분석한다. ‘5무 교회’란 로고에 십자가가 없고, 새벽예배와 성경공부, 구역이 없으며, 장로 직분이 아직 없는 교회를 의미한다. 저자는 전통적인 교회 구조를 벗어나 수평적이고 친밀한 공동체로 탈바꿈하며 부흥하는 미국과 유럽의 젊은 교회들을 나열한다. 로고와 외관에서 십자가를 덜 드러내는 대신 설교와 찬양, 전도와 선교의 신앙 활동 속에서 실제적으로 강조한다. 이는 신학적 변화가 아닌 표현 방식의 변화로 ‘집 나간’ 청년들을 다시 불러들인다는 파격적 실험이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교역자들의 위선과 권위주의에 대한 실망, 삶의 해답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목사의 설교, 정치의 진영 논리에 갇힌 교회의 정체성,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소외감, 교인들과의 관계로 인한 상처와 소통·공감 결핍, 전문성과 진심성이 결여된 전문 지도자의 부족, 온라인 예배의 증가 등이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를 기억하는가.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 52분 1호선 중앙로역 구내에 진입한 전동차 안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50대 남자의 방화로 사망자 192명 등 340명의 사상자가 나온 대형 참사였다. 죽기 직전에 전송된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한 전동차 안에 연기가 가득 찼는데도 대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장면이다. 가만히 있다가 죽음을 당했다. 왜 죽었는가? 이른바 동조 현상이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관계기관이 실험해보았다. 열차 안에 연기가 나도 세 명이 가만히 있으면 또 다른 한 명도 그대로 따라했다. 이것이 연쇄 반응을 낳아 동조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결론이었다.
‘3의 법칙’이 있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추진할 때는 주변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한다. 두 사람이 하면 주변의 관심만 끈다. 하지만 세 사람이 추진하면 동조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횡단보도에서 세 명이 하늘을 쳐다본다. 그러면 건너가던 수십 명이 같이 하늘을 쳐다본다. 선각자 세 명이 상황을 변화시킨다. 상황을 바꾸는 힘은 3의 법칙이다. 예수님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한다”고 했다. 다음세대를 위한 변화의 시작은 ‘3명’이다.
한국 교회는 청년과 다음세대를 위한 ‘제3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먼저, MZ 세대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고 연구하며 소통해야 한다. 예수의 복음을 이들의 문화에 반영하여 청년들이 찾아오는 교회,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변혁시켜야 한다. 교회의 수평적 리더십 구조 구축, AI에 기초한 선교 전략과 젊고 세련된 브랜딩 전술 운용, 그리고 원색 복음을 맛깔나게 선포하는 대중 친화적 강단 설교에 공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영적으로 갈급한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성령이 임재하는 역동적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교회의 본질은 예배다. 이를 위해 젊고 세련된 감각의 청년 지도자 양성이 시급하다.
어떤 청년이 형에게서 멋진 자동차를 선물 받았다. 한 어린 아이가 부러워했다. 청년이 “너도 나중에 형에게서 이런 선물을 받을 날이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아이가 말했다. “나는 선물 받은 것이 부러운 게 아니에요.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동생에게 선물 사 준 형입니다. 나도 나중에 동생에게 선물해주는 형이 될 거에요.” ‘받는 동생’에만 머무는 교회는 소망이 없다. ‘주는 형’이 많은 교회가 살아난다. 청년을 살리는 교회, 다음세대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교회가 부흥된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준비하라.”(벧전 3:15)
본지 논설위원, 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