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교수] 교회, 킬링센터? 힐링센터!
SBS 금토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은 연쇄살인마 ‘사마귀’가 잡힌 지 20년이 지나 모방범죄가 발생하여 범인을 잡기위해 아들 차수열 경감(장동윤 분)과 평생을 증오한 ‘사마귀’인 엄마 정이신(고현정 분)이 공조수사를 벌이는 내용이다. 최종회에서는 정이신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비밀이 밝혀진다. 말리던 엄마는 딸 정이신 눈앞에서 아버지 정현남(차 경감의 외조부)에 의해 죽임과 불태움을 당한다. 그 트라우마가 정이신을 살인마로 만들었다. 정현남은 후에 목사가 되어 고아들을 돌보면서도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추악한 짓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난 주님께 용서받았다”라며 궤변을 늘어놓다가 딸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정이신은 격분하여 외조부를 죽이려던 아들에게 “핏줄은 의미가 없어.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해.”라고 애원한다. 살인마가 되었지만 아들만큼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는 엄마의 진심이었다. 드라마는 연쇄살인 엄마와 경찰인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적용점을 시사해준다. 인간의 악한 죄성과 약한 삶, 그리고 죽음에 기독교의 복음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교회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불완전성을 희화화하는 도구로 자주 묘사된다는 비판을 넘어서 이들에게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 ‘어떻게 사는지’가 인간됨의 현주소다. 아니, 교회는 어떻게 사는지에 앞서 어떻게 죽는지를 알려주는 곳이다. 어떻게 죽는지가 어떻게 사는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죄와 죽음의 유일한 대안이다. 구원은 돈으로도, 힘으로도, 핏줄로도 가질 수 없다. 교회의 정체성은 삶과 죽음, 죄와 의, 지옥과 천국, 영벌과 영생을 구별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교회는 땅의 논리와 돈의 법칙, 세상의 방정식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하늘의 순리와 창조주의 경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세상이 원하는 교회, 교회가 그리는 교회》(김도인 외, 글과길, 2025)는 ‘한국교회 추락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진단과 처방을 내놓았다. 저자들은 ‘세상이 생각하는 교회’, ‘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교회’, ‘성경이 보여주라는 교회’,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교회’를 서술한다. 한 저자는 “정치, 경제, 사회 제도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다시 타락한다. 이 지점에서 교회는 유일한 대안이다. 교회는 인간 근본 문제, 즉 죄의 문제를 다루고 회복을 선포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한다.
특히, 한국교회는 두 가지 깜냥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한다. 교회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깜냥과 세상에 변화를 촉구하면 세상이 반응할 수 있는 깜냥이다. 그래서 정의로운 교회의 조건으로 예언자적 목소리, 회복과 돌봄의 공동체, 내면의 거룩함과 공동체의 투명성을 꼽았다. 교회가 세상에 보여주는 것으로 세상을 덜 타락하게 할 수 있어야 하며 진정한 교회는 혼란스러운 한국 사회에 정밀한 답을 줘야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사슴이 사자를 피해 숨는 것은 겁쟁이여서가 아니라 살려는 몸부림이다. 소라게가 구멍에 숨는 것도 살려는 발버둥이다. 살려고 숨는 것은 비겁함이 아닌 용감하고 위대한 본능이다. 숨는 것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숨느냐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며 그 크신 팔과 그 넓은 품에 안기는 것, “주 날개 밑”에 거하는 것, 이것이 교회의 존재 가치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이 십자가에 자신의 정과 육을 못 박으며 자아를 죽이는 킬링센터(Killing Center)다. 동시에 숨고 싶을 때 언제든지 숨 쉬며 치유 받는 힐링센터(Healing Center)다. 숨는 것은 숨쉬기 위해서다. 교회는 혼자 숨쉬기 어려울 때 착용하는 인공호흡기며 영원한 연명장치다.
류시화 시인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오래된미래, 2008) 중 ‘신과의 인터뷰’가 있다. 그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신께 물었다. ‘인간에게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 신께서 대답해주셨다.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서 어른이 되는 것, 그러면서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 돈 벌기 위해 건강 다 잃어버리고 건강 찾기 위해 돈을 다 써버리는 것, 미래를 위해 현재를 잃어버리고 결국 현재도 미래도 다 잃는 것, 결코 죽지 아니할 것처럼 살다가 살아볼 일도 없는 것처럼 죽어가는 것, 이게 바로 인간의 놀라운 점이다.’” 교회는 이 물음에 해답을 내놓아야 하며 구체적이고도 실천적 대안을 현재의 대한민국에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킬링센터와 힐링센터로서의 본질에 충실한 교회의 모습이다.
본지 논설위원, 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