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하나님은 없고 종교만 있는 공동체로(?)

종교개혁 508주년을 맞은 교주화 되어가는 한국교회를 진단한다(2)

2025-10-29     유달상 기자

정치와 종교의 야합, 사회적 혼란 야기

하나님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킨 한국교회,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는 한국교회에서 종교개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늘 한국교회는 하나님은 없고, 종교만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올해로 루터의 종교개혁 508주년을 맞았다. 15171031일 루터가 비텐베르크교회 문에 95개조의 고백적 고발문을 내건 것이 종교개혁의 단초가 되었다.

당시 루터는 무명 사제에 불과 했다. 마그네부르그 감독에 임명된 알프레히트는 마인츠의 감독직을 겸하기 위해 교황에게 엄청난 뇌물을 상납하고, 그의 지배권 내에서 면책증을 판매하는 권한을 부여 받았다. 면책증으로 축적한 부의 반은 교황에게 상납했고, 반은 자신이 착복했다, 믿음의 척도를 헌금의 액수, 하나님 나라의 척도를 헌금의 액수에 비례하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면책증 판매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하는 도화선이 됐다. 루터의 저항은 알프레히트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리스도교의 권력구조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당시 감독은 그 지역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교회는 모든 권력의 총체이기를 고집했다.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당시 유럽교회는 부패의 온상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그리스도가 지향했던 목표가 아니다. 루터는 부패한 교회를 보고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종교개혁의 저항은 그리스도를 자기와 같은 숙명체로 생각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부패한 중세교회를 그대로 닮아가는 한국교회에 가던 길을 멈추고, 기도한 만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메시지이다. 루터가 말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성격은 분명하다. 그것은 한마디로 저항정신이다. 불의를 보고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이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권력체로서 존재할 수 없다.

언제나 섬기는 자여야 한다. 권력화된 성직자의 세속적인 지배제도에, 예수님을 교리로 만들어 그 뒤에 숨기 바쁜 정치꾼, 모리배들에게 저항해야 한다. 오늘 교회의 지도자들은 정치와 야합해 교회를 부패하게 만들었고, 교회의 생태계를 무너트렸다. 종교와 정치가 야합하면, 그 사회는 부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신은 없고, 종교만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정치와 야합하면서, 하나님의 질서,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복음에서 이탈한 그리스도인들은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권력자와 함께 권력을 누려왔고, 누리려고 한다. 모두 자신과 가족, 자신이 속한 공동체만을 위해서 일하는 욕심쟁이가 되었다. 이들은 성령을 방매하며, 교인들에게 남은 하나까지 빼앗아 버린다. 이들이 바로 교주이며, 예수님을 팔아 이득을 챙기는 사이비이다.

면죄부를 파는 종교개혁당시의 교회의 모습.

사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구원을 받는다
부활의 예수, 피안으로 간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안서 승리

성서적인 입장서 루터의 저항은 당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계급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보자로 고백해야 한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고백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사이에 또 하나의 중개계급으로서의 사제계층을 끼워 넣어 사제를 매개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는 이단들이 주장할 수 있는 논거이다.

루터에게 있어, 아니 불의에 저항하는 사제와 교인들에게 있어 종교개혁, ‘히에라르키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했다. 루터는 만인사제론과 성서해석의 독점권에 저항했다. 종교개혁 당시 교회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참담한 교리에 얽어매던 것을 뒤돌아보면, 루터의 종교개혁, 저항은 당연했다. 돈을 받고 면죄부를 주는 것과 돈 없고 힘없는 목사와 단체에게 이단의 올무를 씌우는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나님나라는 헌금의 액수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특수계급, 성직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성경말씀을 독점하며, 교인들에게 무조건 추종을 요구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죄인으로 규정해버린 예루살렘의 패거리들로부터 등을 돌렸다. 저들이 인간취급도 않던 갈릴리지방의 보잘 것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서 이들의 아우성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그의 거처는 분명 가난한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 이들의 삶의 현장이었다. 예수님의 언어 역시 이들의 언어였다. 그곳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삶의 현장이었다. 그곳에 예수님이 계셨다. 이런 예수님을 중세교회는 교리화 시켜버렸다.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바쁜 한국교회는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 5만여 교회 중 한민족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곳에는 그 흔한 교회 하나 없다는 것은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고난의 십자가는 건물 꼭대기에 매달려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국민들의 걱정거리로 변해 버린지 오래되었다. 예수님은 수많은 미신적 사크라멘트적 교리를 타개함으로써, 그들로부터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구원했다. 루터는 갈라디아서 연구에서 복음성의 핵심인 의인론을 재수립했다. 지식과 지위를 가진 전문가들의 점유물이 되고, 이들만이 알 수 있는 교리적인 구원론에 대해서 문맹도 쉽게 알고 행할 수 있는 믿음만으로란 구원론을 내세웠다.

믿음만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에

그 자체를 분석해 보면, 루터의 믿음만으로의 구원론은 매우 대중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루터는 사제계층만이 독점하기 위해 라틴어로 된 성경을 민중의 언어로 옮겼다. 그리고 교권주의자들의 허구적인 성경 독점권에 저항했다. 그리고 나는 자유인이어서 누구의 종도 아니다.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빚지지 않았다라는 바울의 주장을 종교개혁에 적용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다는 자유가 궁극적 복음의 실체임을 그대로 드러냈다.

자유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이것은 보잘 것 없는 사람 중심의 그리스도교 정신을 바로 파악한 것이라는 점에서 오늘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에도 한계가 있었다. 부작용도 뒤 따랐다. 루터는 정교분리와 두 나라설을 주창했다. 두 나라설은 권력과 야합, 부패하는 교회 내부의 사정에만 국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결과 정치, 사회에 대한 방임주의, 나가서는 그리스도공동체들의 무책임한 체질로 변하게 하는 계기를 가져다가 주었다.

루터는 “‘세상나라는 육체와 제물만을 다스리고, 교회는 영 또는 영적인 영역에만 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이분법의 모호성도 문제지만, 이로써 그는 정치권력의 횡포와 권력을 방임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정치와 종교를 나누어버리면 아무리 사랑과 생명을 강조해도, 그것은 결국 허구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권력에 의해 고난당하는 자를 위해서 일할 수 없다.

루터의 두 나라설의 영향을 받은 한국 개신교는, 정교분리를 내세워 일본식민주의와 미국 팽창주의를 정당화해 주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 식민지 아래서 선교사들은 피압박민족의 아픔을 몰각하고, 교회에서의 의식화 및 민족운동, 항일운동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심지어 구약성경을 본문으로 하는 설교도 철저하게 금지했다. 여기에서 이탈한 교인을 교회에서 추방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경건주의와 근본주의, 그리고 정통주의적 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은 오늘도, 루터의 종교개혁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종교개혁 508주년을 맞은 오늘도 마음껏 우려먹고 있다. 모두가 예언자 전통에서 이탈해, 잘못된 정치와 권력에 대해서 소리한 번 내지 못하고, 돈의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사실 오늘 한국교회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으로 변하고, 어재 밥을 함께 먹던 동역자가 오늘은 적으로 변해, 서로를 공격한다. 모두가 힘을 가진 대표회장에게 빌어 붙어 버린 결과이다.

종교개혁 비판없이 받아드린 신학자

루터의 종교개혁 오류와 허점이 드러났음에도, 508년 전 10월 달에 단행된 종교개혁이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이, 종교개혁이 일어난 당시 중세교회의 상황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 루터의 종교개혁은, 유럽의 종교개혁 기폭제가 된 것은 물론, 영국의 산업혁명이후에도 제2의 종교개혁이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그 중심에는 사제들이 있었던 것에 대해 부인할 수 없지만, 교파 간의 화해 등 종교개혁을 외친 사람들은 대부부 평신도 신학자들이었다.

루터가 주장한 두 나라설은 결국 사회개혁을 이루어 낼 수 없었다. 종교개혁은 사회개혁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루터도 처음 영주와 농민들 간의 전쟁에서 중간자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루터도 결국에는 학대받는 농민들을 버렸다. 루터는 타락한 종교의 개혁만을 생각했지 그것이 사회개혁과 병행될 때 비로소 성공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오늘 한국교회가 루터의 종교개혁 508주년에 목을 매는 이유는, 선교초기부터 정교분리를 주창해온 한국개신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교분리를 말하면서,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권력자들과 함께 온갖 혜택을 누려온 한국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이외에는 어떤 것도 내세 울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최소한 한국교회가 오류와 허점투성이인 루터의 종교개혁의 정신만이라도 이해하고, 목회현장에서 실천했다면, 한국교회에서의 종교개혁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말 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신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키고, 신의 현현을 달러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예배는 다우존스 주가지수이고, 신의 성체는 돈이 됐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았다.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실업자들은 거리를 헤매고, 자본가의 횡포는 극에 달했다. 이미 자본과 결탁한 세상나라는 그 자본가들의 협조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리스도교는 두 나라설의 충실한 수호자로서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했다. 나아가 전환기에 생기는 폭동에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공장 안에서 착취를 당하고, 자리에서 쫓겨나는, 이른바 노동자들을 무마하는 일에 충실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교는 자선운동으로써의 의식, 무의식적으로 자본가들의 시녀노릇을 정당화 했다.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그리스도는 정의에 눈뜬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이 됐다. 이런 분위기는 마르크스주의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우연은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이 극에 달하면서, 19세기 말 이후 루터의 두 나라 설에 맹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잠에서 깨어 제2의 종교개혁운동을 일으켰다.

영국에서는 모리스, 킹슬리, 커들로 등, 미국에서는 로센부시, 독일에서는 부름하르트 부자, 바르트, 본회퍼 등 스위스에서는 쿠테르, 라기츠 등, 이들은 사회개혁과 동시에 종교개혁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한마디로 선교의 무대가 교회를 넘어 사회전체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교회가 변화되지 않고서는 사회도, 정치도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사회개혁과 동반될 때 완성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쿠테르와 라기츠는 자본주의적 사회체제에 대한 냉혹한 비판과 더불어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을 종교라는 탈을 씌워 인위적 성역에 가두어 버림으로써, 결국 사회는 무신 세계화되고 맘몬이 판을 친다고 종교를 애리하게 분석, 비판했다. 한마디로 교회의 하나님 독점화로 야기된 모순을 공격했다. 쿠테르는 <당신의 의무>에서, “맘몬니즘에 근거한 제한 없는 탐욕을 원리로 하고 거짓을 근본으로 하여 형성된 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라고 진단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종교가 아니다라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칼 바르트는 그리스도교와 종교성을 준엄하게 대립시키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그가 젊은 시절에 받은 영향 때문이었다. 독일의 나치스의 폭압과 황포는 그리스도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여기에서 행동하는 교회, 행동하는 종교, 행동하는 성직자의 양심에 대한 중요성이 강하게 제기된다. 루터의 두 나라설은 그리스도교를 관념적인 종교로 만들어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스도교는 종교개혁과 사회개혁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독일의 나치는 이 관념에 의해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침묵하며, 나치의 충실한 충견의 역할을 수행했다. 본회퍼는 나치 정권을 그대로 인정하는 한 모든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통감했다. 때문에 그는 저항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그는 투옥되었고, 감옥 안에서 신학자로서의 신학적인 고민과 그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고 안병무 박사는 본회퍼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서 한마디로 그는 스스로 게토화된 교회의 문을 열고 그들을 밖으로 내모는 전선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본회퍼는 부활의 예수는 피안으로 간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사회 안에서 승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현장에서 그의 승리를 보고 거기에 참여해야 한다고 교회의 사회적 역할론을 강조했다.

부활의 예수 피안이 아닌 이 사회서 승리

본회퍼의 이 같은 교회의 역할론은 유럽교회를 비롯한 제3세계 교회, 그리고 아시아 국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게토화된 교회의 문을 활짝 열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근본주의 신학과 경건주의 신학, 정통주의 신학, 식민주의 신학 등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인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교회는 아직도 감상적이며, 추상적인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며,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한 관념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유대인 600만을 학살하는데 히틀러 혼자서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은 무조건 싫다는 유럽 기독교인들의 관념이 히틀러와 함께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했다.

한국개신교 역시 선교초기부터 루터의 정교분리를 내세운 두나라설에 충실했다. 세계 기독교 역사상 한국 개신교처럼 정권과 밀착된 종교도 없었다. 개신교는 불의한 정권을 응원하는 응원자였다. 군사독재정권을 정당화해 주었으며, 힘없는 백성들이 권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데도 침묵했다. 심지어 일부 교회지도자는 피묻은 손에 기도를 해 주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그리스도교의 역할을 제처 놓고, 권력을 등에 업고 바벨탑을 쌓기에 바뻣다.

본회퍼는 감옥에서 고난당하는 민중을 발견했다. 그 민중을 예수님이 싸고돌며, 또 예수님이 좋아 밤낮으로 따라다녔던 갈릴리의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동일시했다. 예수님은 저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였는데, 누가 저들을 정죄할 수 있다는 것인가. 있다면 교리요. 교권이지 본회퍼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 본회퍼는 신학자로서 신학적인 근거를 찾아야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회퍼는 신학자로서 신 없이 사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필요했다. 여기에서 본회퍼는 바울에게 근원을 두고, 루터에게서 종교개혁의 원천이 되었던 의인론을 들고 나왔다.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죄인이 법적으로 의인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범인 그대로를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적이라고 말하는 재고품 없애 버려야

한마디로 그들의 의식상태가 어떻든, 무슨 일을 저질렀던 하나님은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한다. 본회퍼는 교회를 세계로 불러낸 순교자이다. 차안트는 순교자들 중에 세계를 교회로 불러들인 사람은 많은데, 교회를 세계로 불러낸 사람은 본회퍼 이외는 없다고 했다. 이는 교회의 시대가 끝났음을 경고하는 말이 아닌가. 돼먹지 않은 지식으로 신학이니, 교회니 말하는 인간,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적이라고 말하는 재고품들 정리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종교개혁이 절실하다. 이것이 종교개혁 508주년을 준비하는 오늘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는 더불어 산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더불어 수난 당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길은 자기를 낮추고 비우는 것이다. ‘더불어 고난 당한다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결부되어 있다.

예수님은 이 땅의 고난당하는 사람들 속과 역사의 현장에서,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다가 수난을 당하셨다. 오늘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수난의 상징인 십자가를 건물 꼭대기에 호화롭게 장식해 놓고, 헌금을 많이 낼 수 있는 부자들이 몰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십자가는 이 땅의 가난하고, 멸시받고, 천대받고, 감옥에 갇힌 죄인들에게 희망이 되지를 못하고 있다.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이 되어 버렸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게토화된 교회를 개방해 세상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받아드려야 한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을 호화로운 십자가와 교회당 안에 가두어 버려 신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없애 버렸다. 그래서 본회퍼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를 세계로 끌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마디로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예수님의 역사의 현장, 삶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세상으로 나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여야 한다.

이것은 전쟁과 기아로 고난당하는 인류와 세계복음화, 사회선교를 위해서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며, 신학자들의 신학적 관점,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관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예수님 가운데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당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교회,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