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빌립 목사] 참 구원론-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의 구원론이다(10)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하신 말씀은 ‘내 계명을 지키라.’이다. 하나님의 계명과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한 삶이 곧 100배 60배 30배로 결실을 맺는 옥토에 뿌려진 씨앗의 결과이다. 이 결실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광이 됨이요. 또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우리가 매일 기도하는 주기도문이 이루어져 사실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성도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모든 계명과 말씀을 지켜 결실을 맺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지 못한 이유가 수도 없이 많다. 가장 큰 이유는 거듭나지 못함이다. 거듭나지 못하면 우리 육신의 연약함이 가장 큰 훼방이 된다. 제자들이 한시간도 깨어 기도하지 못함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마태복음 26:40-41)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또 다른 이유는 진리의 혼미함 때문이다. 그냥 단순하게 예수님께서 “내 계명을 지키라.‘ 하신 말씀대로 지키면 되는데 우리는 그렇게 단순하게 순종을 드리지 못한다. 예수님은 어떠셨는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 이시다. (요한복음 19: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아멘. 나 자신을 돌아보아도 내 신앙의 제 일순위가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지켜 행함에 있지 않다. 아마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의 신앙 제 일순위 역시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계명을 지켜 행함이 아닐 것 같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현재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고 그렇게 배우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교회가 가장 먼저 회개하고 회복해야 할 과제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말씀과 계명을 지켜 행하기 위하여 땀흘려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주기도문을 이룰수도 없고 예수님과 연합 되지 못한다.(요한복음 14:21)
우리 모두가 알거니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과 행함 사이에는 오랜 신학적 교리 논쟁이 있다. 바울이 말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과 야고보가 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의 충돌이 마치 오랜 영적 전쟁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진리가 얕은 물과 같을 때 잠시 겪는 혼란이지 ’바울의 믿음‘과 ’야고보의 행함‘은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편협한 가라지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 보완해 주고 더 온전하게 예수님께 나아 갈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말씀들이다.
(빌립보서 3:9-16)절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아멘
바울 사도의 깨달음은 참으로 놀랍다. 또한 그 깊은 깨달음을 우리에게 저렇게 문장으로 나타내 준 것은 더욱 놀랍다. 우리도 겪는 일이거니와 우리의 아는 것을 말로나 글로 그 깊이를 표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럼에도 바울 사도는 그의 전한 복음에서 ‘예수님의 의’와 ‘자신의 의’를 철저하게 구별하여 말한다. ‘예수님의 의’는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의요,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의다.
이 의는 우리가 지키는 율법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고 오직 예수님께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럼 우리의 의는 무엇인가? 우리의 의는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얻는 의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지켜 행한다고 하는 그 율법은 이미 타락한 우리를 그 상태로라도 보존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편이신지라 우리를 더 부패하지 못하도록 보존하는 정도의 의(義)일 뿐이다. 이 의로는 이미 지은 우리의 죄를 조금도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은 생명의 의는 율법을 지켜 행함에서 나올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한 것이다. 죄는 사망을 낳는다. (야고보서 1:15). 이 때문에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지은 죄의 값을 치루셨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생명의 의는, 우리가 여전히 불순종하고 제 좋은대로 살아도 저절로 얻어지는가? 아니다. 그럴수 없다.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함과 행함이 없이는 예수님을 따라 갈 수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철저하게 지금까지 드려온 자신의 모든 순종과 행함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예수님의 영생의 의를 얻기 위하여 달려 간다고 한다. 그 ‘달려간다’고 하는 것이 야고보가 말하는 ‘살아 있는 믿음의 증거가 되는 행함’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신의 행함이나 순종이나 공로의 의(義)를 전혀 자랑할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한다. 참된 생명의 의는 오직 예수님께로만 나오기 때문이다.
동북신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