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빌립 목사] 참 구원론-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의 구원론이다(11)

2025-11-24     김빌립 목사
김빌립 목사.

이미 서점에 가득한 구원론을 또 쓰고 있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가고 있다고 하는 구원의 길이 이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의인이 많아져서 점점 더 넘쳐야 되는데 반대로 이기주의자들만 넘쳐나고 예수님을 위하여 살겠다고 찬양하고 고백한 것처럼 예수님을 위하여 죽는자가 넘쳐나야 하는데 오히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무색하게 만드는 자들이 넘쳐난다. 오래전 생명신학 포럼을 주체하신 주체자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한해 졸업하는 신학생이 2000명이 넘는데 어찌하여 사도바울 같은 제자 한명이 안나오느냐! 우리가 참으로 생명이 있는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지 돌아보자!” 라는 말씀이셨다. 이런 간절함들이 구원론을 다시 써 보려는 이유다.

교회와 성도가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 모두의 소망이 이러함과 같이 참 생명의 길, 참 구원의 길을 찾아야 한다. 답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모두 답을 알고 있고 또 서로를 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고 책망도 많이 한다. 답은 한가지 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성도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함에도 구원론에 있어서는 우선 순위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는 안된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이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지만 구원이 오직 믿음한가지로만 이루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럼 구원이 행위 구원인가? 그건 더더욱 아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구원은 영접, 믿음, 회개, 회심, 순종, 간절함, 옛사람의 죽음, 고쳐주심, 거듭남, 성령의 임재. 영적전쟁, 의로움, 사랑, 하나님의 영광, 심판이 모두 다 이루어 지는 십자가의 길이다. 이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기에 끝까지 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요지부동의 믿음이 있어야 변치않고 주저않지 않고 따라갈 수 있기에 믿음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어리석음이 있다. 믿음은 끝까지 예수님의 손을 잡고 천국까지 따라가게 하겠지만 그것이 전부다. 실제로 구원의 모든 과정을 이루시는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모든 구원의 과정을 사실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마태복음 5:33-37)의 말씀과 같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아멘. 우리의 아는 것이나 의로움이나 믿음으로는 머리카락 한올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 하셨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구세주로 오셨다. 구원을 이루는 저 모든 과정을 이루시는 이가 말씀이시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의 믿음 또한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임하신다.

믿음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끝까지 주님을 붙잡고 따라가게 한다면,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 모든 구원을 이루신다. 그런데 왜 우리는 믿음만 말하고 말씀을 소홀이 하는 것일까? 또 말씀을 말한다면서 머리카락 하나도 희거나 검게도 못하는 율법을 지켜 행하는 질 낮은 행함을 말하는 것이 반복 되는지 모르겠다.

성도들이여! 믿음으로 예수님을 굳게 붙들었는가! 그럼 이제부터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라. 그것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구원의 길이다. 이 길을 가야 하기에 제 좋은대로만 가려는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아멘. 오늘도, 지금 이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우리를 성령께서 심히 책망하시지만 마음이 완악하고, 눈이 어둡고 귀까지 막힌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가 회심하고 회개하고 고침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을 책망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13:10-18) 말씀이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열매 맺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이제라도 이 말씀을 귀담아 듣자.

동북신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