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지도자 왜! 악령과 무속의 정치인을 비호하는가(?)

마음의 정화, 청아한 귀, 맑은 눈을 갖고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자(상)

2025-11-25     유달상 기자

범죄의 중심에 늘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하나님은 인간과 계약을 맺었다. 1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이며, 2계명은 우상 숭배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오늘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범죄에, 무속과 관련되어 있는데도, 교회들이 침묵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윤 어게인을 외치는 자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이며, 기독교인 정치인들이다. 어느 정치인은 계엄령을 선포한 것에 대해 하나님의 계획아래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이념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오늘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인격살인에 가깝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범죄자 대부분은 주술사 아니면, 기독교 지도자들이라는데 안타깝다. 현대판 매관매직의 대표주자가 된 국가조찬기도회 회장이 통합측 장로이며, 국가교육윈원회 위원장직을 금 거북이를 주고 산 국가조찬기도회 부회장도 기독교 교회 권사이다. 오늘 국가조찬기도회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에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계엄을 옹호하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전 국무총리도 기독교인이며, 김 여사에게 값비싼 빽을 뇌물로 전달한 의원도 장로교 합동측 장로이다. 이들 모두는 하나님 이외 다른 신을 믿지 않는다고 기도하는 개신교인이다. 문제는 이들의 언행이 기독교 신앙과 다른 통일교를 비롯한 이웃종교, 무속인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또한 이들을 옹호하며, 계엄을 하나님의 뜻으로 몰아붙이는 대부분의 인사 역시 개신교의 목사이며, 교인들이고, 기독교정치인들이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게 다가온다. 연일 쏟아지는 정치인 관련된 가족들에 대한 보도는 가족범죄집단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또한 맹목적인 신앙과 무속에 대한민국의 운명을 맡겨야 되는 것만 같은 보도내용도 국민들을 참담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서 예언자적인 전통에 서서 복음에 충실해야 할 교회는 여야의 진영 및 이념논리에 갇혀, 국민들을 좌우로 갈라놓은데 중심에 서 있다.

예수님의 평화에서 이탈을 해도, 후보가 샤머니즘에 갇혀 있어도, 정치인이 부모형제들과 화합하지 못해도,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오히려 이들을 비호하기에 바쁘다. 진영논리에 갇힌 정치인들은 서로 물고 뜯으며, 상대방에 대해서 인격살인은 물론이고, 국민을 피곤하게 만든다. 분열과 갈등, 범죄의 중심에 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이 있다는데 참담하다. 모두 예언자전통에서 이탈해 교회가 해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양심이 마비된 목사, 돈의 흐름에 따라 이중적 태도
정교분리
, “나라가 요청하는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

정교분리단어에 충실 하는 한국교회

예언자전통서 이탈한 한국교회는 정교분리를 말하면서, 정치에 깊숙이 개인한다. 존 로크는 중세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종교 안에서 파벌싸움이 일어나자, 이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종교에 간여해서는 안 되며, 종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종교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가 종교에 신앙고백을 요청하면, 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고 정치와 종교분리를 주창했다.

종교분리를 주창한 존 로크나, “종교 안에서 갈등이 일어나면, 국가가 종교에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홉즈의 국가종교론은 모두 종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놓은 이론이다. 영미교회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한국교회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정교분리라는 단어에만 충실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이야기하면서,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갈등만을 부추긴다.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지금까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강하게 외쳐 왔다. 그리면서 정치에 깊숙이 개입해 왔고, 개입하고 있다.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권력자들을 비호하고, 온갖 혜택을 누렸다.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쟁이가 됐다. 한국교회 일부 목사와 교단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목회자와 교회는 교회가 가야할 길, 예수 그리스도의 길, 십자가의 길에서 이탈했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한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영미의 근본주의 신학과 정통주의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여 보수화된 교회와 목회자, 목회자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교인들은 권력도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성서의 예언자전통서 이탈해 권력의 주변을 맴돌았다는 사실에 대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한국교회가 독재자들에게 맹종하는 결과를 낳았다. 군사독재자들의 피묻은 손에 기도를 해 주는 잘못도 범했다. 이 같은 잘못에 대한 지적에, 목사는 이것이 목사가 해야 할 일이다고 변명한다.

예언자전통에 섰던 진보적인 교회와 교단의 목사들도, 진보정부가 들어 설 때마다 권력의 주변에 있었다. 그렇다보니 보수적인 교회와 교단은 진보적인 교회와 교단, 단체에 대해 항상 적대적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충성심 경쟁을 벌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국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은 청와대의 초청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웃지 못 할 일도 새 정부가 들어 설 때마다 일어나고 있다.

악령과 무속의 정치인을 찬양하는 교회

청와대의 초청을 받지 못한 교단의 지도자들은 그 서운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청와대 초청에서 배제된 교단의 지도자들은 늘 정권의 반대세력으로 등장하곤 한다.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의 초청을 받지 못한 A단체와 B단체가 문 정부에 대해서 서운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진보와 보수 양대 세력으로 갈라져 진영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속에 깊숙이 간여한 대통령과 영부인, 예수님의 평화보다도 로마평화(팍스)를 사랑하는 정치인에 대해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목회자들은 무조건 특정 정치세력에 맹종한다. 해방이후 한국교회는 정치적 진영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갈등과 반목을 계속해 왔다. 대한민국 국민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우상 천왕을 섬기는 일본이 하나님의 진리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오방과 악령에 길들여진 박근혜 정부가 국민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오는 것을 목도했다. 무속에 기대어 통치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끝내 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도 권좌에서 내려와 탄핵됐다. 그럼에도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오방과 악령, 무속에 길들여진 정치인들을 비호하며, 이들의 잘못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이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겠다며, 거리로 나온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과 약속한 계명에서 이탈한 사이비이다. 권력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들이다.

무속인이 특정정당의 캠프에 들어와 정치인의 눈을 가려도, 교회의 목사들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이에 침묵하며, 우상을 섬기는 정치인을 위해 기도해 주고, 목사가 해야 할 일이다고 한다. 어쩌다가 정치인이 성경책을 들고 나오면, 그를 선한 그리스도인으로 포장한다. 이들은 예수의 길을 걷는 목사와 교인이 아니다. 주술사나, 무당과 전혀 다른지 않다. 북한의 김정은을 맹종하는 북한의 인민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들은 북한 김정은 3대 세습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은 세습을 아무렇지 않게 단행한다. 마음의 정화가 안 된 인간들이다.

또한 이들 목사는 대예배에서 특정정치인을 소개하면서, 설교에서 노골적으로 특정후보를 선택하라고 한다. 이는 분명 선거법 위반이며, 교회의 선거개입이다. 선거법 위반으로 보수의 가치를 말하며, 대형집회를 주도했던 부산의 A목사가 구속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면서 제1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설교한다는 것이 언어도단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 보수적인 일부 목회자들이 하는 짓거리이다. 힘 있는 정치인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들이다.

6.25한국전쟁 당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남침을 감행한 김일성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범행도 서슴지 않았다. 권력에 맹종하며, 권력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 한국교회 일부 목사의 이 같은 행동은 과거 한국교회 행적으로 보아 당연한지도 모른다. 또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피 묻은 손 위에 기도해 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에 의해 한국교회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교회의 질서와 생태계,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졌다.

자성하는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쓰레기 하치장이 되어 구더기가 우글거리며, 파리 떼만 들끓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2025년 성탄절을 기다릴 수 없다. 다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시 처형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줄 것이다.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있어 권력은 아편이 되었다. 권력이 우상이 되었다.

쓰레기 하치장으로 변해버린 교회

복음보다 권력이 무섭다. 강대국 미국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들이다. 정치인들은 한국교회를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물론, 교회가 오방과 악령, 무속에 길들여진 정치인들에게 악용당하고 있다.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자신과 같은 진영이 아니면, ‘빨갱이’, ‘좌파’, ‘용공분자로 매도하기에 바쁘다. 예언자의 역할을 상실하고, 권력의 주변을 맴돈 한국교회의 분열은 선교초기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영미의 교파주의를 그대로 받아드린 한국교회는 한국선교 140년 동안 분열과 갈등의 역사만을 남겼다. 오방과 악령, 무속 정치인의 주변을 맴도는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예수를 교리와 제도로 만들어 그 뒤에 숨어버리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한국교회는 정교분리를 주장하며, 정치권력과 함께 성장해 왔다. 그 누구도 오방과 악령, 무속에 길들여진 정치인을 향해 쓴소리를 내지 못한다. 오히려 한국교회는 이들을 비호하는 종교단체가 됐다.

일제하에서 예언자의 전통을 이은 목회자들은 우상 천황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의 진리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예언했다. 이 예언은 오늘 복음보다 강대국을 무서워하며, 우상으로 섬기는 한국교회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한국교회는 일본식민지세력에 굴복, 신사참배를 결의, 하나님을 배교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조선총독부로부터 수개의 법인을 얻어내는 등의 혜택을 누렸다.

당시 일부선교사들 역시 피압박민족의 아픔을 몰각했다. 조선의 백성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며, 식민지세력에 협력했다. 해방 후 한국교회는 이승만 대통령이 장로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 대통령의 최대 후원자의 역할을 자처했다. 오늘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이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으로 추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한국교회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서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군사독재정권의 최고부역자였다는 지적도 받는다.

사실 한국교회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내세워 국민적 이념갈등을 부추기며, 권력자들과 함께 권력을 누리려고 했다. 한국교회는 장로교단 헌법의 근간이며, 장로교단의 헌법을 기초로 만들어진 공화정을 몰각했다. 한국교회는 자유민주의는 있어도,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공화국은 없다. 한국교회는 장로교의 공화정 헌법이 세계 모든 나라의 헌법의 기초가 되었다는 자부심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

총칼로 권력을 잡은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주도하는 오류도 범했다. 한마디로 피 묻은 손에 기도를 해 주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칼로 잡은 권력은 칼로 망한다는 성서의 진리를 망각했다. 독재정권 하에서 한국교회는 고난당하는 청년·학생들이 폭도로 매도당해도, 이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를 못했다. 군사독재정권의 최대 협력자였던 한국교회는 전두환 대통령이 불교신자였던 것에 대해서만 서운해 했다.

청주 시골에서 목회하는 김성용 목사는 교회의 하나님나라운동에서의 이탈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한국교회에서 종교개혁을 다시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군사독재 정권을 위해, 피 묻은 손에 기도를 해 주면서도, 고난당하는 이웃을 몰각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분단된 한반도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왔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남북한 독재자들이 정치적으로 악용하면서, 국민들을 정치적 이념 속에 가둬 두는 결과를 낳았다.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누구도 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말 할 수 없었다. 남북한의 문제, 통일의 문제는 권력자 몇 명의 점유물이었다.

전쟁, 한민족 모두 죽음으로 가는 길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깨어난 국민은 분단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념적 갈등, 사회적 갈등, 정치적 갈등을 해결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깨어난 일부 지식인과 학생들은 평화적인 민족통일운동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적인 교회와 교단은 로마평화(팍스=힘에 의한 평화)가 아닌, 예수님의 평화(샬롬)운동을 전개하면서, 남북한 교회의 교류, 남북한민족의 화해를 시도했다.

그 결과 남북한 교회는 제3지대에서 만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한 형제자매임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서와 공동기도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남북한 교회 간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남한교회는 북한 봉수교회를 건축해 주고, 연탄보내기운동, 나무심기운동 등에 저극 참여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남북한교회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교류는 얼마 가지를 못했다. 김정은의 통제아래 있는 북한교회가 교류의 문을 닫으면서, 현재는 남북한교회가 단절됐다. 그것은 경제, 통일,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한때 남북한의 교회와 기독교 교단 및 단체는 예수님의 평화(샬롬)을 분단의 현장에서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이루는 일에 봉사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하지만 남북한교화는 폐쇄된 북한 현실과 한국교회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것은 모두가 이념갈등에 매몰돼 서로를 인정하지 못한 결과이다. 모두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굳어져, 마음을 열고 너를 받아드릴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상실했다.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겉으로는 예수님의 평화(샬롬)를 말한다. 하지만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로마팍스를 외쳐 왔고, 외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으니 남한도 핵무기로 무장하고, 북한을 선제 타격해야 한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자들이 바로 한국교회 지도자이며, 이들로부터 설교를 듣는 교인들이다. 이 주장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이 땅에서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남과 북의 전쟁은 한민족 모두가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오늘날의 전쟁은 과거 재래식 무기로 전쟁 할 때와는 전혀 다르다. 남북한의 보유한 가공할 무기는 한반도를 10번 이상 초토화 시킬 수 있다. 오늘날 정치인에게서 국민적 희망을 찾아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여야 정치인들에게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찾아볼 수 없다. 정치인 모두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인격살인에 가까운 말들로 점철되어 있다.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함께 범죄 하는 이들이 바로 교회지도자이며, 그리스도인이라는데 안타깝다. 정치인들을 향해 냉정한 비판의 소리, 예언자의 소리를 내는 목회자와 교인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예언자의 사명을 상실했다. 교회는 군사독재정권이나. 일본식민지세력이나, 오방과 악령, 무속에 길들여진 지도자를 향해 어떠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하여 왔다.

오히려 이들을 감싸며, 충견역할에 충실했다. 이들에 의해 국가가 무너지고, 교회가 무너지고 있는데도, 한국교회는 정치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독차지하고 욕심쟁이가 됐다. 그러면서 교인들에게는 성령을 복 방망이로 악용해, 교인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어둡게 한다. 이제 한국교회 교인들은 눈이 멀어, 귀가 막혀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발자국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이 자신과 동일시 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아우성도 듣지 못하고 있다.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굳어진 인간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굴어져 나에게서 너와 그에게로 성령이 흐르지를 않는다. 그리고 모두 푸른 들판을 볼 수 있는 눈을 잃어버렸다.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있는 눈과 귀, 마음도 잃어버렸다. 그렇다보니 예언자 전통에서 이탈한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은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는 자와 무속에 길들여진 자, 가족도 화합하지 못하는 자에게 충성하며, 박수를 보낸다. 이들이 오늘 우리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한때 한국교회는 불교의 템플스테이 국고 지원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종교 간의 형평성을 내세워 사찰 문화재 출입 관람료에 거세게 반발을 했다. 또한 한국교회는 WEA 서울총회를 둘러싸고 찬반논쟁을 벌였다. 반대하던 목사가 하루아침에 찬성입장으로 돌아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인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한국교회 일부목회자들이 두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들은 목회의 철학도, 신념도, 양심도 없다. 돈과 권력의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교인은 교회의 공 예배에 출석 하던, 않든 과거 교회에 나왔다가 잠시 휴면상태에 들어갔어도, 한국교회 교인이다. 한 동안 공 예배에 출석하지 않았다고 해서 기독교인이 아닌 것이 아니다. 한번 내 마음 속에 예수님을 받아드리면, 자신이 개종하지 않는 한 영원히 한국교회의 교인이며, 하나님의 자녀이다. “자신과 정치적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교인이 아니다고 맞받아치는 것은 목회자가 할 일은 아니다.

성남의 모교회의 목사는 자신이 00교회 교인이라고 말하는 정치인을 이미 출교시켰다면서, 교인이 아니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 목사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인의 기준을 어디에다가 두고 있는 것인지(?) 모두가 교회에 출석하든, 안하든 하나님의 피조물이다는 성경말씀을 망각한 것은 아닌지.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배우자를 만나 결혼까지 했는데, 교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목회자는 어떤 의도에서 교인이 아니라고 말했는지. 스스로 교인이라고 말하는데, 교인임을 거부하는 교회는, 교회라고 할 수 없다. 특정집단이 모인 사교집단에 불과하다.

고대부터 종교와 정치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도 역시 정치범으로 체포돼,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요한도 정치범으로 처형됐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드린 이후 종교와 정치는 한 몸이었다. 유럽교회도 마찬가지이었다. 당시 정치, 문화, 경제 등 모는 것이 종교에 예속되어 있었다. 당시 도덕과 윤리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종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모두 천상의 삶만을 위해서 종교에 매몰됐다. 지상의 삶 모두가 전창의 삶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종교는 정치와 함께 경제에 예속되어 버렸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천상의 삶 못지않게 지상의 삶도 중요하게 생각하며, 종교로부터 자유, 정치로부터의 자유, 경제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며, 천상의 삶 못지않게 지상의 삶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오늘날 인간의 삶을 유택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법,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법 모두는 기업인과 정치인에 대해서 매우 관대하다.

이런 상태로는 다가오는 2025년 성탄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없다. 모두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너와 그를 받아드릴 때, 퇴색된 성탄절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끼(?)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