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길 목사]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계절이 이쯤 되면 우리들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 비슷하게 나오는 말이 이 말이 아닐까 싶다. 난 전염되듯 이 말을 어려서부터 주어 들었다. 내 주위에는 누님의 친구들 여고학생들이 몰려와서 수다를 떨면서 특히 가을이 짙어지는 이쯤이면 한숨 비슷하게 터져 나오고 노래까지 등장하면서 주위의 가을 풍경보다 더 짙어가는 가을의 한 가운데 있음을 나 자신이 먼저 그 어린 나이에도 깨닫게 되었으니, 그때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가을은 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도 했거든, 이런 기억 때문인지 가을하면 여고생들이 먼저 생각이 난다. 말 같은 처녀들이 꽉 찬, 더 이상 공간이 허락하지 않는데도 교복 속에 그 풍만한 육체를 꼬깃꼬깃 비집어 넣고서도 터질까 옆에서 보는 사람은 조심스러운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활달하고 탄력 있게 가을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그 순수성에 매료되었는지, 어린 마음에도 가을은 이미 내 속까지 찼으며 내 눈에 보이는 세계는 온통 가을이었다.
내 마음 속의 가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은 가을여행을 재촉하며 가을비에 질척거리는 길바닥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낭만의 감촉으로 다가오는 가장 깊은 가을의 정서로 표현되어 위로받는 모습은 가을만이 우리의 이런 마음을 터치하는 계절 특유의 장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을엔 다 변한다. 먼저 그 무덥던 기후가 변한다. 우리의 여름은 그토록 무덥기도 하고 모기 파리 떼며 수시로 괴롭히는 벌레들, 더구나 도시환경에 적응을 마친 벌레들은 인간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우리의 적이 되었지만, 찬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면 기가 한풀 꺾임과 동시에 자취를 감추느라 여념이 없는 그의 세계도 여름철과 달리 동정이 가니, 드높아진 가을 청명한 하늘에 대고 이렇게 외치지 않을 수 없다 '가을엔 다 변한다 모든 것이 다 변한다 내 마음까지도 변한다' 아니 기후며, 벌레 얘기며, 마치 다 변했다는 거야, 아니지 사실 변한 것이 한둘이래야 계속 열거하지, 이렇게 말해야 맞는 말이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거리가 노오란 색으로 단장한 가로수로 온통 변한 분위기이며, 멀리 보이는 산야가 두른 색채며, 사실 다 변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주위 자연 환경의 컬러가 변하니 모든 것이 다 변한 느낌이다.
참으로 색깔의 변화는 신묘하다. 이미 오래전에 과학적 생물학적 검증이 끝나 이미 초등학생들에게는 상식이 되었지만, 왠지 난 그렇게 분석이나 검증된 사실을 뇌까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오직 내 마음이 느끼는 대로 보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이런 자연세계의 변화보다도 내 마음이 이 계절에 적응하여 감상적이 되는 변화에 더한 신비를 느낀다.
그러나 가을은 겨울을 대비한 여러 가지 현상에서 우리에게 주는 경각심은 사계절의 효율성에서 단연 으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열매는 열매대로, 나는 영적 열매를 얼마나 맺었는가? 그리고 난 자신의 변화의 증거로 옷 갈아입었는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 갈아입고서 예수의 향기가 되고 빛과 소금이 되어 이 세상의 변화 즉 희망이 되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늦추는 의인 10 사람이라는 희망이 되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우리 자신들이 세상으로부터 빛을 받아야만 하는 거꾸로 가는 길에 섰으니….
언젠가 백화점 스포츠의류점 여사장에게 나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거래를 하다가 어느 날 "내 언행에서 내 신분을 일찍이 알지 못했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나를 강타했다. "목사님, 저희 고객들 중에 교회는 안 다녀도 목사님 같은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 세상은 우리 행동이 특별히 세상 사람들과 구분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로도, 그리 자랑스러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라는 의미로도 들리는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바로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니 다 우리가 만든 사회의 한 단면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새롭게 기독인들의 책임을 느꼈다.
우리 스스로 이 깊어가는 가을에 긴히 그리고 깊이 깨달아야할 사안이 하나가 있다. 다 아는 사실임에도 이 문제 앞에서는 기가 죽는 문안이다. 그것은 바로 주님이 그날에 우리에게 질문 하실 문안인줄 믿는다.
"너의 열매는 왜 보이지 않느냐? 내 앞에 내 놓을 열매 맺지 못하고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
이 말씀에 우리는 무어라고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유구무언이란 말이 적합할까 생각이 들면서도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에 얼굴 붉히면서 그냥 서 있지나 않을지 그날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분노에 찬 음성을 듣는다. “아니 날 영접했다면서 그 세월이 얼만데 아직도 열매를 맺지 못했는가, 아니 죄 문제 해결해 주고, 하늘의 영원한 소망을 주고, 돕는 성령님 보내줬는데도 그냥 그렇다니, 이게 말이 되는 것인지, 우리 자신들이 한없이 밉고 답답하게 보인다. 무디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사탄은 열매 없는 나무를 흔들지 않는다.”
한마음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