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길 목사] 고소공포증(高所恐怖症)
우리는 산지가 많은 나라다. 70% 이상이 산지이니 산악의 나라가 아닌가? 그중 높게는 으뜸이 백두산이요 두 번째는 맨 밑에 자리한 한라산이요 그 가운데 지리산 태백산이 자리를 잡고 있어 온 나라가 마치 텐트를 친 모양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국민적 정서가 산을 좋아하는 유전인자를 가졌는지 등산을 좋아하고 주말이면 산으로 가는 추세이고 보면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복장도 웬만하면 등산복이 평상복이 되었으니 외국인들이 신기해 할만도 하다.
일본에 가서 보고 느낀 점이 하나 있는데, 일본은 평지이고 자전거가 많다는 것이었고 자전거도 우리처럼 복잡하게 오르막길을 가기 위한 기어가 있는 것이 아니고 평지에서만 탈 수 있는 자전거가 대부분이었다. 자전거 하나만으로도 한국의 지형과 일본의 지형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녀보면 그 좁은 동네 길도 오르막 내리막이 공존하니 올라갈 때는 힘들고 내려갈 때는 또 위험하고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드나 조상 적부터 살아온 터전이 이럴진대 불평을 하면 달라질 것도 없어 다만 다음엔 나이를 고려해서 전기 자전거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누누이 하고 있다. 그러나 지형이 아름다워 삼천리금수강산이니, 요사이 한국을 방문한 중국 여행객들이 ‘한국은 온통 나라가 공원이다’ 라는 말이 실감이 간다. 그러니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사실에 기쁨과 감사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도 산이 많으니 나도 산행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목사님들의 산행에 나이도 잊은 채 염치도 없이 따라 붙는다. 지난 10월 23일에 밤 시간을 이용하여 내려가 찜질방에서 하룻밤 묵고 경상도 밀양 지역에 위치한 영남의 알프스 라고 부르는 천황산(天皇山, 1189m)을 목표로 일찍 등정을 시작하였으나 코스를 잘못 들어 1km 가까운 거리를 바윗돌로 펼쳐진 코스로 오르다 죽는 줄 알았는데 정상에 서보니 역시 잘 했다는 자찬과 함께 뻥 뚫린 가슴과 시야에 펼쳐진 우리 산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아 내려왔다. 하산 중에 늦게 산에 오르던 중년의 부부가 나의 나이를 묻고서 그들은 이 말 한마디 던졌다. “아니 그 연세에 그 코스로 천황산에 오르다니 우리 는 기적을 본거야.” 아니 내 나이가 어때서? 등산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다만 가파른 산세여서 그렇지, 아니 그런가? 그날 산행에 동행한 동역자들이여, 말 좀 해 보이소!
이런 나도 고소공포증으로 결정적인 절경을 놓치고 만다. 대부분 케이블카나 구름다리가 놓인 곳은 절경인데, 그만 이 증상으로 타기는 타도 눈 감고 옆에 있는 사람의 배려로 안겨 통과하니 할 말이 없다. 중국 장가계에 가서 그 공포의 Climax를 체험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데 케이블 카를 설치할 수 있을까? 그 의문은 잠깐이고 오르자마자 밑을 도무지 볼 수 없어 눈 감아도 안심이 안 되어 품어 주시는 넉넉한 분의 배려로 겨우 내려 가슴을 쓸어내리고 숨을 고른 후, 두 세상사는 감격을 누린 기억이 있는데, 지금도 생각만하면 아찔한 것이 현실감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이 중세 덕에 전남 영암의 월출산에 올랐다가 그만 구름다리 앞에서 하산한 일이며 대둔산이며 구름다리나 케이블카가 있으면 나에겐 최악의 난코스가 되고 마니 의도적으로 놀이공원 88열차나 그 외에 밑에서 보기 만해도 아찔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까지 더해져서 지금까지 이것들을 타본 일이 없다면 자랑일까 아니면 소심한 자의 항변인가? 그러나 누가 뭐래도 난 높은데 올라가 어지러워서 괜히 올라왔다고 후회하지 않고 안전한 땅위에서 내 생을 구가하며 열심히 살리라 이 생각에는 추호도 물러설 마음이 없다는 사실은 인정해 줘야 한다. 높은데 올라가기가 쉬운 것인가? 정상까진 가능한데 항상 사고는 내려올 때, 유명한 산악인들도 하산 때 일어나는 돌출된 위험 앞에는 언제나 속수무책이다.
올라갈 때마다 내려올 때 잘해, 내려올 때 잘해 라는 어르신들의 염려가 괜한 참견이겠지 했으나 정답인 것을 오늘 우리들의 경험에서도 입증이 되고 있다. 하산할 때의 사고율도 그렇지만 정치인들 역사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처음엔 의기양양하게 입성했다가도 나올 때 아니 내려올 때 국민적 지탄 아니면 비난과 검찰 소환이라는 무덤에 까지 내려가니 참으로 안타깝다. 얼굴에 달걀 세례만 받지 않아도 다행이다 싶다가도 실제 본인은 얼마나 자존심에 먹칠하는 일이 될까 생각하다가 그래 항상 내려올 때 잘해 라는 말이 새삼 먹혀들어간다.
사실 나는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어렵다는 사실을 초등학교 때 배웠다. 아버지와 함께 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지게에 짐을 지고 내려올 때 무척 어려움을 느꼈다. 고무신은 닳아 미끄럽지, 비가 오면 흙이 씻겨간 그 자리도 위험천만이지….
그 주의와 권세 제일주의에 목을 매는 사람들은 고소공포증도 없는가? 내 입장에서 보면 신기하고 놀라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던데, 아니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오르고 내려올 때 무섭지 않을까? 한 마디 묻고 싶소. 그리도 높은 자리가 무섭지도 않소? 그리하고도 내려올 때 굴러 떨어질까 하는 염려는 없어요? 제발 내려올 것도 생각하기 바라오.
오늘도 고공에서 자기 기술을 보여주는 분들에게 제발 “고소공포증 환자가 되어주시오” 라고 이 분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한마음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