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길 목사] 유권무죄무권유죄(有權有罪 無權無罪)

2016-11-16     기독교한국신문
▲ 문 용 길 목사

요즈음 나라안팎의 분위기며 개개인의 형편이 좋지 않아 은근히 염려와 두려움이 앞선다.

누가 이 사회와 나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언젠가 탈옥수들의 입으로 외쳐 이 사회와 국민들의 부정적 공감대를 일으킨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기억을 회복하여 생각 속에 떠오르는데, 그 때도 안타깝게 생각했는데, 오늘의 현실도 그 반대개념 비슷하게 유권유죄 무권무죄 라는 대체된 말을 만들어 볼 때, 오늘의 사회와 우리의 정치현실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판단에서 자화자찬의 미소를 얼굴에 띄어본다.

사실 White-collar의 범죄율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는데, 타의 모범이 되었어야 할 사람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이 사회의 암적 존재로까지 지칭되는 현실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배웠으면 사회에 그 지식을 환원하는 자세로, 그리고 겸비한 성품으로 이웃을 대하고, 자신의 지식이 만인 공유의 지적 재산이 되고, 가진 자들은 나누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소외된 이웃에게 희망을 던지는 축복의 투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진정 인간이 갈 길인데도 사람 되기를 포기했는지 아니면 혼자만 살아남겠다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표본이라도 되는 양, 속된 말로 눈꼴시어서 못 봐주겠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으니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딱 감아버리고 심정이 안타깝게도 불같이 일어난다.

지난 과거의 사건이긴 하지만 너무나 안타까워 지금도 기억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유치원생들 수련회 장소에서 화재로 인명 손상이 큰 사건 후 어느 부모가 타국으로 이민신청을 하고 떠나면서, 아이들 키우기엔 불합리한 나라로 분노를 품고 발걸음을 해외로 돌린 일이 있었는데, 이런 일이 종종 그 뒤로도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는 사실은 우리가 깊이 반성하고 뼈저린 교훈으로 새겨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각성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사회에 달갑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부류들이 떵떵거리며 철갑통의 밥그릇을 챙긴 사람들로 인해, 아무래도 이 나라를 등지고 눈물 뿌리며 탈북 아니 탈남의 행렬로 이어지는 일은 단순한 나의 기우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생각 속에 젖어있다가도, 실로 염려스러운 일이 되지 않을까 장담할 수 없어 내 나라 조상 적부터 살아온 금수강산에 대한 후손들의 배신적 행위로 치부되지 않을까 하여 내심 염려가 된다. 정녕 우리는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개인이 만든 말(言語)이라도 시대를 타고 유행하듯이 유권유죄 무권무죄라는 말도 유전무죄 무전유지 란 말의 등을 타고 속칭 권세를 가진 자들에게 경종이 되는 말이 되기를 원할 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사회인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촛불집회를 보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은 평등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기회균등과 힘 있는 자가 약자를 배려하는 겸양의 정신이 양심과 의식으로 확고히 하지 않는 한 민주사회라는 말은 힘을 잃은, 날개를 잃고 날지 못해 추수 후 황량한 논밭에서 허둥대는 철새 꼴이 아니겠는가?

사실 민주사회의 가장 기본은 힘 있는 자가 약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정신이리라. 그런데 웬일인지 우리는 구별된 위치에 올라서면 목에 힘을 주고 대화에서 존칭어가 사라지며 불의도 합법화하는 폭력적 행위는 실로 자성해야만 하는 우리들의 미래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성공하려면 비전과 용기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공통분모가 되는 것인데 오늘의 우리의 현실은 비전과 용기를 꺾어버리는 사회로 자리매김이 되어가고 있지나 않은지 아쉬울 뿐이다.

대천덕 신부의 일화로 우리들의 입에 회자되는 그의 스토리가 있는데, 내노라 하는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대통령 정치지도자를 비하하는 자리에서 그분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면 비난하지 말라는 충고에 입을 다물었다는 일화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는 각성이 큰 이야기가 되고 있다.

한마음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