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갑오년이 저물고 2015년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새해아침에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하면서, 지난해 못 다한 목회를 금년도에는 꼭 이루겠다고 새로운 다짐을 하곤 한다. 그리고 희망을 노래해 본다. 12월 31일 마지막날 들이는 ‘송구영신’(送舊迎新)예배는 옛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아들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항상
묵은해와 새해가 달라질 것이 없다. 새해가 왔다고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도 아니고 새해의 한 날이 25시간이 될 수 없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해를 주셨을까? 한 마디로 새 출발하라고 새해를 주신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가 새 출발해야 한다. 빌 3:13-14에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
한국의 ‘마이클 무어’로 불리는 김재환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 이 영화에서는 사랑의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왕성교회, 삼일교회, 금란교회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형교회들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부자가 된 일부한국대형교회에서 일어나는 잘못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영화는 기독교가 문화가 되고, 기업화 되고, 대기업화 되어가는 등 세속화 된 교
기독교 청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주일학교 침체는 해가 갈수록 심해져 몇몇 교회에서는 주일학교를 아예 운영하지 않는다. 아이들도 청년들도 없는 교회, 이는 교회의 미래가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청년들이 줄어들면서 기독청년운동도 갈수록 침체되고 있다. 그동안 기독청년들은 교파를 초월하여 사회정의와 민족복음화를 위해 최일선에서 눈부신 활약을 해왔다. 특히 교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서 올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특히나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겨울은 불시에 찾아오는 불청객과 같을 것이다.지난 17일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가족 없이 혼자 살아오던 70대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이 노인은 각종 병치레에 시달
김지하 시인의 라는 희곡은 머리에 금관을 쓴 시멘트 예수상이 거지와 문둥병자, 창녀에게 “나는 오랫동안 시멘트 속에 갇혀 있었다. 어둡고, 답답한 시멘트 감옥 속에서 너희처럼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또 함께 괴로움을 나누고 싶었느니라. 금관을 벗겨주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이 감옥에서 해방되는 날을, 해방되어 너희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있어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가 항상 따라다닌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이 세 가지가 없다면, 이 사람은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사랑이 없을 수가 없고, 사랑이 있는 사람이 소망을 버릴 수가 없다. 히브리서 나타난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하여 일을 크게 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본질인 ‘구원’, ‘전도’, ‘다락방’, ‘복음’ 등의 문제의 단체에 빼앗겼다. 그렇다보니 목회자와 교인들의 입에서 이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만 보아도 용어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특히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중 하나가 ‘복음’이다. 그럼에도 목회자 대부분은 “성서의 복음이 무엇이
한국교회는 공교회로서의 사회적 공공성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것은 교회가 폐쇄적인 은둔자들의 집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즉 교회가 지역사회에 속한 교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지역주민들의 삶에 동참하지를 못하고 있다는데 쉽게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교회는 주민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다. 주민들의 삶속에서 한국교회를 이
교인들은 다음과 같은 댓글을 통하여 울분을 토하고 있다. “총회 재판국은 적법하지 않은 법조항을 바꾸어 판결하는가? 법이 장난도 아니고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도 않는 비겁한 짓. 구린내가 풀풀 나는구나, 총회재판국! 정말 한심하다. 법이란 것이 이렇게 절대적 기준도 없이 개인에게 맞추기 위해 왔다 갔다? 이는 헌법에 대한 모독이며 법을 신뢰할 수 없게 하는
한국교회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국민 모두는 한국교회에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사회적 약자들과의 소통이 단절되고, 부자들을 위한 교회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덩달아 한국기독교도 부자가 되었으며, 교회들은 남아도는 재정을 주체하지를 못해 경쟁적으로 바벨탑 쌓기에 급급하고 있다. 한마디로 중세의 타락한 기독교의 모습이 한국교회 안에서 그대
총회 재판국은 적법하지 않은 법조항을 바꾸어 판결하는가?법이 장난도 아니고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도 않는 비겁한 짓.무슨 재판이 고물도 아니고···쓰면 뱉고 달면 삼키고?구린내가 풀풀 나는구나, 총회재판국!정말 한심하다. 총회 재판국의 법적 이해력과 양심이 정말 이정도?법이란 것이 이렇게 절대적 기준도 없이 개인에게 맞추기 위해 왔다 갔다? 이는 헌법에 대한
오늘 한국교회는 성경 속의 예수가 아닌 가공된 예수를 신격화하며, 성경 속의 예수가 아닌 사람들이 요구하는 가공된 예수를 믿고 있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한 현실인가. 뿐만 아니라 가공된 예수를 둘러싸고 온갖 기괴한 종교놀음만 가득하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예수가 대단히 출세한 나라. 그것이 지금의 한국교회의 현 모습이다.지금의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
60만원을 받고 인터넷을 통해 생후 7개월 된 딸을 팔아넘긴 비정한 대학생 아빠가 경찰에 붙잡혔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된다.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이 지경에까지 왔는지(?) 한마디로 친자식을 버리고, 자식을 폭행하는 대한민국 일부 가정의 모습은 참담하다. 가정의 파괴로 인한 아이의 폭행, 계모의 폭행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아이의 모습,
70-80년대 한국교회는 불법, 탈법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파헤쳐 기도원 및 수양관을 조성했다. 따라서 산과 물이 좋은 곳은 여지없이 기도원과 수양관이 들어섰으며, 이로 인해 한국교회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했고,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는 논리가 적용했다. 법의 달인 7월에 다시한번
기독교한국신문 제67호(2014.6.3일자)에 실린 기사에서 ‘목레기’(목사+쓰레기)라는 신조어를 접했다.그 글을 올린 필자는 “목사로서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하였다.“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말이 있듯이 “목사면 다 목사인가, 목사다워야 목사이지”라고 말하고 싶다. 목사답지 못한 목사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목레기’라는
이 글은 과거 구원파에 몸담았던 연로하신 목회자가 구원파를 빠져나와 최근 세월호의 참사와 함께 무너져 내리는 대한민국과 가정을 걱정해서 기고한 글. 전문이다. 인간의 탐욕과 비윤리는 결국 인간의 가치관을 무너트리고, 파멸로 몰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보내왔다. 여기에서 말씀드리는 것은 이 목회자는 필
4월과 5월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참 잔인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도 세월호 참사 등의 여파로 잔인한 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6월은 현충일을 바ㅣ롯하여 6.25사변, 제2연평해전 기념일 등 국가의 존망이 달력 곳곳에 흩어져 있다. 순국선열들의 피로 얼룩진 역사가 가슴 한 곳을 후벼 판다. 국기 게양대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봐도 가슴이 저린 것도
한국교회 왜 여기까지 왔는가(?)에 대해서 교인들과 국민들은 묻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선교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이다. 로을 대부분의 교회는 목사 한사람을 위한 선교, 교회중심의 선교, 돈 중심의 선교에 매몰된 나머지 교회의 정체성을 상실했다. 최근 각종 언론은 한국교회 때리기에 경쟁을 벌이고 있
세월호 참사로 나라 전체가 비통에 잠겼다.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는 자부심은 괜한 객기였나 보다. 누가 보아도 후진국형 인재(人災)가 아닌가.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이 그 차가운 바다 속에서 마지막까지 몸부림쳤을 것을 생각하면 어른으로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서 아직도 아들, 딸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들을 생각하면 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