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그것도 전 총리가 독립운동가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다면 누가 믿어줄까. 꿈에서나 가능할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처럼 꿈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전 총리가 12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아 독립운동가 추모비 앞에서 일본의 만행을 사과한 후 무릎 꿇고 순국선열을 위해 참배한 것.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하토
예장 통합총회가 ‘목회자 윤리지침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한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목회자들의 윤리의식이 갈수록 땅에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 들어 한국교회는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재정비리, 추문, 명예훼손 등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사회로부터 따가운 시선과 비난을 받아 왔다. 특히 이러한 사건의 중심에는
우리민족사에 가장 혹독한 고난의 밤이라 할 수 있는 일제식민통치기간(1910 ∼45년)은 불행한 역사이지만, 한편 이를 계기로 민족혼을 일깨우고 역사의식을 새롭게 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에 나라를 사랑하는 백성들은 스스로 의병이나 독립군이 되어 일제와 무력항쟁을 하는가 하면, 혹은 점진적인 문화개혁을 통해서 애국심을 일깨우기도 했고, 외
400여 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해방되어 모세의 인도로 가나안을 향한 광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라암셋을 떠나 수르광야, 신(Sin)광야를 거쳐 시내산에 이르고, 바란광야의 가데스 접경에 이르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금 한국교회는 차별금지법의 제정 시도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동성애자와 싸우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오히려 동성애자들의 입지를 넓혀 주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유력한 장을 만들어 주고 있다. 많은 프랭카드 그리고 표지판에 “동성애자 OUT!"라는 글귀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내용과 의미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
모처럼 시간을 내어 ‘암살’이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8.15 광복절을 앞둔 시점에서 시의적절한 영화였다. 독립군들의 항일투쟁을 ‘도둑들’이란 영화로 유명한 최동훈 감독식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등 내로라하는 국내 유명배우들이 총출동한 묘미도 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광복 70주년을 기해 개봉했다는 점에서 우리 역사를 제대로 이해
광복절을 앞둔 주일인 9일, 오후에 서울시청앞 광장을 비롯, 도심 한가운데서 대규모 기도회가 열린다. 광복 70주년이란 타이틀이 걸려있지만 모처럼 1천만 한국교회의 세를 결집하고 과시하는 목적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번 기도회는 올해 신년 임진각 기도회를 시작으로 통독의 발판이 되었던 니콜라이교회 월요모임을 본 따 매주 월요일마다 명성교회에서 열린 평화통일
2015년은 광복 70년, 분단 70년, 선교 130년을 맞은 뜻 깊은 해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는 일본의 피압박에서 해방된 지 70년을 기념하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해 의미를 더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이란 슬로건을 내건 8.15 경축식 등 다양한 기념사업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막바지 준비작업에 한
광복과 분단 70주년이다. 분단된 반쪽은 언제쯤 하나가 되고 아픔이 치유될 수 있을까. 광복과 함께 찾아온 분단의 역사는 긴 터널과 같은 70년의 세월이다. 분단은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다. 왜 하나가 되지 못하는가.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관련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벤트적인 행사에만 치중
예수님은 고리대금업자를 책망하셨다. 가장 성서적이면서도, 가장 건강한 교단, 한국교회를 리더 하는 교단이라고 외쳤던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연금재단이 불법 브로커를 통해 카지노업체, 부도직전의 건설사 등을 상대로 대부업을 해 온 사실이 드러나 한국교회와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것이 통합측이 말하는 성서적이며, 건강한 교단이 해야 할 일인가(
아동학대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그것도 80%이상이 친부모에 의해서 학대를 받고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분명 대한민국 가정의 아이들이, 아니 하나님의 피조물인 아이들의 인권이 부모(어른)들에 의해서 짓밟히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두 살배기 딸이 계모의 구타에 의해서 목숨을 잃고, 신생아들이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주검으로
1984년 이후 개신교인 1천만명이 교회를 떠났다는 통계가 있다. 28년동안 한국교회의 교인 1천만명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종교을 갖지 않은 사람이 교인이 되었고, 불교 등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교인도 있다. 분명한 것은 개신교의 교인들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997년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불교, 천
사람들이 노인이 되면 물건에 대한 애착이 심해진다. 그리고 무언가 남기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살아온 흔적들에 대한 추억이고 기억이다. 고달픈 인생이든 즐거운 인생이든 그 사람이 가고 없는 자리에는 그 사람만의 흔적과 향기가 있다. 그것을 사람들은 기억하고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한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떤 기억을 남겨주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예수그리스도
멀리 있어도가까이 있는 듯 그리움을 속삭이고 싶은 관계가난하여도부자인양 주머니 속 탁탁 털어 다 주고 싶어진다더러는 제 한 몸 바쳐 사랑을 고백하고 이슬 잠긴 뒤편으로 사라진다누가 뭐라고 해도제 앞에 있는 사람이 가장 고상한 것도모든 것 다 잃고도 부자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도사랑하면 다 바보가 되기 때문이다긴긴 밤이 짧게 느껴지는 것과새벽녘까지 장문의 편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돈, 혹은 나는 성, 아니면 보석, 또는 권세, 명예, 지식 이런 답변이 즐비하게 나올 것이다. 물론 가치관 이야기겠지만 끝에 가서는 성과 돈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명예와 권세를 택한 사람들이 돈 앞에서 몰락하는 사회상을 보면 그렇고, 멀쩡하다 싶었는데 성 앞에 무너지는 것을
인간에 대한 인간의 정의가 어찌 동일할 수 있겠으며 그 복잡다단한 인간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가? 짧은 말로 정의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무리한 일일 것이다. 오히려 성경에서 인간에 대한 정의를 찾는 것이 분명하고, 확실할 것이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오셨고, 구원하신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정의보다 분명하고 확고한 정의가 어디
우리 대한민국은 어느덧 일제치하에서 해방을 맞이한지 70년이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에서 벗어난 감격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다. 1910년 8월 28일 주권을 빼앗기고 피나는 투쟁으로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기미년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를 때 기독교인의 뛰어난 신앙과 애국심을 그 누구도 잊지 못할 것이다. 1939년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국가적으로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설치해 각종 사업을 추진하고, 각 기관이나 단체에서도 정책적으로 광복 70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온 나라가 일제의 피압박에서 벗어난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열심인 모양새다. 이 나라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민족의 대화합을 이룬다는 점에서 박수쳐줄 일이다. 하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나라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국가와 사회, 개인 모두가 ‘광복 70년’을 기리기 위한 행사 준비에 한창이다. 일제의 피압박에서 해방된 뜻 깊은 날이니 오죽이나 할까. 하지만 자칫 ‘광복 70년’이 상업화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괜한 기우일까.현재 대한민국 각 분야에서는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 황교
저수지에 말과 소가 빠지면 둘 다 헤엄쳐 나오지만, 큰 물이 나서 말과 소가 빠지면 ‘소는 살아 나오지만 말을 빠져 죽는다(牛生馬死)’는 말이다. 실제로 소보다 말이 더 헤엄을 잘 치지만, 말은 헤엄 실력을 믿고 빠져 나오려다 지쳐 죽는 반면, 소는 물결에 떠내려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물가로 밀려 나와서 산다는 것이다. 소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