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는 메르스 공포, 극심한 가뭄, 정치적 혼란이라는 3대 악재에 직면해 있다. 그 어느 하나 만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적 큰 문제인데, 이 셋이 한꺼번에 겹친 최악의 상황에서 모두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유독 교회가 보이지 않는다. 교회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보이는 것은, 이 참혹한 현실이 다분히 인재(人災)같지만, 그 배후
한 마리짐승으로 달려와숨을 고르고 있는 끝과 시작의 교차점뭍이 끝나는 곳에서바다가 열리고바다가 끝나는 곳에서뭍이 열린다땅끝은 끝이 아니라또 다른 시작이다. 시는 과학적 진술어인 르포나 기사와 달리, 담긴 내용을 그대로 읽어서는 안 된다. 묘사와 진술 속에 시인이 숨겨놓은 마음, 즉 은유의 속내를 밝혀내야 한다. 첫 연 ‘달려온 짐승’은 해남에 있는 한 반도
갓 태어난 신생아가 또 어머니에 의해 살해됐다. 도대체 왜 이 땅에서 이러한 일들이 끊이지를 않고 계속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생명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상실한 결과가 불러온 결과라는데 이의가 없다. 전라남도 나주경찰서는 신생아를 상자에 담아 택배로 친정엄마에게 보낸 비정한 엄마 이모(35세) 여인을 ‘시체 유기혐의’로 구속했다. 이 여인은 갓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중요한 것의 하나가 영적 리더십이다. 좋은 리더십은 성경 말씀에 부합되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성경이 명령하는 대로 교회를 섬길 때 영적권위가 나타나게 된다. 교회에서 영적 리더십은 제도적으로는 감독의 직분에 주어져 있다. 감독은 오늘날 목사와 더 나아가 장로를 가리키는 성직(聖職)의 명칭이다. 감독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일본 우익인사들의 역사왜곡 망언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보다 정당화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들의 침략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위안부문제조차 스리슬쩍 빠져나가려는 거짓수를 쓰고 있다. 참으로 인간의 탈을 쓰고, 금수의 짓을 저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수교 50년을 맞았다. 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한일
지중해 푸른 바다달빛에 드러냈을 때음산한 기운이 조여온다다시스를 향해 가는 배철모르고 앞장서 뛰는아이들처럼 달리나큰 손에 뒷덜미 잡히고안간힘 써도 소용없다바다 神들은 다 불러내고가진 것 다 깊은 물에 쏟아 붓고애걸복걸 눈물 콧물 쏟아내도 붙든 손은 요지부동이다한 가지 이 풍랑 책임을 덮어씌워 제물로 삼을 인간제비뽑아 찾아내기로 하다배 밑층에서 곤히 잠들어
분단 70년, 6.25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지 65년을 맞은 한국교회 모두는, 하나님의 영,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는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평화교회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것은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영, 성령을 강조하며, 반통일적, 반교회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는 사실에서 극명해 진다. 사실 한국교회는 남북분단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메르스의 위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메르스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더 심각하게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르스는 다 알다시피 중동 지역에서 발생하는 호흡기 질환이다. 중동에서는 일종의 독감처럼 여겨지는 질환일 뿐이다. 그런데 이땅에 들어와 온 국민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메르스는 낙타의 숙주를 통해 감염된다고 알려져
민족상잔의 비극이 발발한 지 벌써 65주년이 됐다. 서로 총칼을 겨누고, 한반도 한가운데 크고 큰 38선의 상처를 남긴 한국전쟁. 산천이 변하고 변해 흙내음도 달라졌건만, 조국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은 한반도 곳곳에 서려있다.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아들이었던 그들의 피땀이 여전히 한반도 전역을 물들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가 온 나라를 집어 삼키고 있다. 정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안일한 대응이 부른 이번 사태는 마치 담뱃불이 온 산을 태우듯 기세 좋게 번져나가고 있다. 가뜩이나 나라 살림도 어려운데 사회 전반의 활동에 큰 차질이 발생하면서 생산·소비·수출까지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해졌다.시시각각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에 극심한 공포감을 느껴 아예 밖에
메르스가 창궐하는 이 정신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도대체 대통령은 어디 있는 거야?” 뉴스 때마다 근황이 보도되고, 방미도 취소하며 연일 메르스 대책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왜 국민들은 대통령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 있을까? 각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조그마한 움직임도 이 메르스와 관련 있는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왜 우리 대통령의 광폭 움직
피비린내 나는 민족상잔의 비극.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5년이 됐다.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눠야했던 아픈 상처가 여전하다. 하지만 지난 과거보다 더욱 아픈 것은 작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분열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누구보다 아픔을 감싸주고, 화합의 연고를 발라줘야 할 한국교회마저 분열에 편승해 가는 모습이 심히 보기가 좋지 않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나라와 민족, 애국심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전파된 이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사명을 다했다.선교 초기 병원과 학교를 지어 병들고 무지한 민중들을 일깨우고 희망과 소망을 심어 줬으며, 일제의 압제 속에서는 독립운동에 앞장서며,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를 흘렸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 요한은 분명히 천명하고 있는데, 한 어머니 리브가의 뱃속에서 자란 쌍둥이 에서와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극명하게 그 운명이 갈리는 안타까운 형제로 남는데 이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하신 말씀으로 인정된다. 그래서 가끔은 우리는 생각하기를 왜 하나님은 미워하셨을까?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은 한마디로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안으로는 누구보다 세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겉과 속이 다르다. 그렇다. 일부 이단사냥꾼은 문제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사례비를 두둑이 챙긴다. 그것도 이단 세미나 강사료라는 명목으로 챙기고 있다. 또한 통일을 이야기 하면
지난 2008년 4월에 북한군 이모 중위가 비무장 지대를 넘어 우리 측 초소 앞까지 다가와 백기를 들고 귀순의사를 밝혔으나 아군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군 경비초소로 직접 다가가 문을 두드려 귀순의사를 밝힌바 있다. 2012년 10월에도 역시 북한군 귀순 용사가 남한 측 동해선 경비대 생활관 문을 두드렸으나 응답이 없자, 30m 떨어진 1초소 생활관까지
하나님께 책임을 미루면 안 된다 인류의 가장 큰 고민은 의식주와 함께 건강의 문제이다. 국가는 의식주 해결하지 못하고 건강상에 문제 있는 계층을 향해 복지를 펼친다. 우리나라는 고대국가시대부터 진대법 등 국가적 차원의 복지가 있었고 지주층이 소작농들에게 빈곤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풍년에 돌려받는 개인적 차원의 복지가 있었다.인류의 가장 큰 고민거리를 국가와
예수 그리스도는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가셨다. 때문에 십자가는 고난의 상징이 되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졌다. 때문에 기독교를 고난의 종교, 생명의 종교, 사랑의 종교, 희망의 종교라고 말한다. 이렇게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필리핀 현지 코피노 지원단체인 ‘위러브코피노’에 따르면, 필리핀에 ‘코피노’가 3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중에는 아버지가 한국인 선교사인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코피노의 엄마는 씨앗만 뿌려놓고, 귀국해 아이의 양육비를 받아낼 길이 없어 애태웠다. ‘코피노’는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코리안+필리피노)에서 낳은 아이를 말한다. ‘코피노’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교회는 6월 4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맞은편 한강 고수부지에서 ‘한국교회 평화통일 특별연합예배’가 열렸습니다.이 연합예배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가 공동으로 주최했고, 한국 기독교 115년 역사상 처음으로 보수와 진보 기독교연합기관이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