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는 아나돗 출신으로 눈물의 선지자로 불렸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대독함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였다. 그 시대의 모든 종교에서 독립된 자로 늘 성문 곁에서 장로, 서기관, 대제시장이나 유대인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함으로 인해 많은 핍박과 고통을 당했다. 32장을 요약해 보면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시드기야 왕의 집 경호대 뜰에 연금된다.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넘
아버지가 족장이었던 구약 시대 때 교회는 가정이었다. 노아 홍수 시대에는 노아와 여덟 식구들이 방주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예배했다. 아브라함의 가정도 아버지 아브라함을 통해 제사(예배)를 드렸다. 시대가 흐르면서 가족이 세계로 분리되게 된다. 족장 시대나 노아 시대, 아브라함의 가족을 보면 자손들이 번성하면서 예배하는 장소가 분리되는데 믿음에 따라서 예배하는 장소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참 교회 상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불편한 교회 상으로 분리되고 만다. 각자의 믿음의 깊이는 다르나 참 교회 상은 여러분의 믿음으로 형성되고 보
이 세상이 힘들어도 말씀을 좇고 진리를 따라서 주님께 회심하고 살아가는 것만이 행복이다. 세상은 점점 흉한 소식으로 가득하지만 내 목숨이 끊어졌을 때 영혼은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가게 된다. 주님을 얼마나 알고 믿느냐에 따라 각자의 신앙은 다르다. 주님을 올바로 알고 잘못된 신앙을 바로 잡기에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인격을 겸비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경건한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본문 안에 숨은 제자 아나니아를 통해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된다.사울이 바울이 되기 전에는 예수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우상 앞에 절하고 소원을 빌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소원을 구하고 기도할 수 있는 우리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들임을 다시 한번 감사한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기도하는 대로 다 응답되고 좋은 일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원하는 것에 응답 받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만이 기도는 아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찾는 이마다 찾는다”(마7) 말씀하셨다. 또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세상
본문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재림관에 대해 편지로 설명을 하고 바르게 잡아주는 내용이다. 당시에 복음주의자들은 성령의 능력은 갖고 있었지만 율법주의자들의 핍박으로 인해 신앙생활은 많이 힘들었다. 하늘로부터 주님이 강림하실 때 죽은자들이 살아나고 산자들도 주님을 보고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이니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18절) 서로 소망을 주고 위로해 주라는 의미이다. 사도들이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전할 때는 잠도 안 자고 말씀을 선포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탄생, 십자가 대속, 부활, 승천, 재림으로 이뤄진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사람을 의인이라 칭한다. 의인은 하나님 말씀의 법을 따라가는 사람인데 의인도 넘어지고 또 넘어진다. 악한 원수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낙심하게 하지만 우리 주님은 영생의 생수를 계속 부어주기를 원한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지 아니 하려니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생수이다. 의인은 넘어지지 않고 믿음 생활 잘하는 줄 알았다. 의인은 세상에 살면서 실패 없이 사는 줄 알았다. 성경에서 대저 의인은 7번
우리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또다시 시작된다. 천국 가는 영생인지 죽은 뒤 지옥 가는 형벌 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잠언 1장에서부터의 말씀만 소유하면 마귀의 올무에 씌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의 힘으로 힘내서 걸어가고 있지만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하나님께로 돌아갈 본향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중심 속에 걸음을 움직이라는 것이다. 잠언 16장 9절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다. 인생의 삶에 다 잘되는 계획을 짰는데 계획대로 인생사가 되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과 성부 하나님만 인정했다. 많은 선지자가 메시아가 이 땅에 어떤 모습으로 오실 것에 대해 외쳤고 들었지만 마음에 담지 않았다. 바리새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었고 중언부언하는 자들이었다. 겉모습은 거룩한 옷을 입은 것 같으나 마음속은 악취가 나는 쓰레기장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 취급을 하며 최고의 형벌인 십자가에서 죽였다. 우리 주님은 인류를 사랑해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죽임을 당하시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고문과 멸시를 참으셨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완악한
중풍 병자였던 사람은 스스로 거동이 불가하여 주위 사람들이 침상째 메고 움직여야만 이동이 가능하였다.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오기 위하여 침상을 메고 나왔다.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오긴 했지만,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을 헤치고 예수님 앞에 가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에 예수님을 만나면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도 고치고, 앉은뱅이도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떴으며 가난한 자, 불쌍한 죄인과 세리들까지도 주님께 인정받았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예수님을 향해 손가락질하였지만, 사람들 사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의 노예로 살다가 고센 땅을 출발하여 숙곳에 도착한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 가나안으로 갈 수 있는 길로 가지 않고 광야로 인도하신다. 홍해를 건너 광야라는 곳에는 지도도 안내판도 없고 어디로 가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인지 전혀 알 수 없다. 17절 18절에 보면 블레셋 땅으로 가면 반드시 전쟁이 일어나기 때문에 하나님이 숙곳으로 이르러 홍해 앞으로 인도하셨다. 그런데 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의도는 생각지 않고 내 앞에 가로막힌 홍해 문제를 놓고 원망하고 불평했다. 창세기
이 시간 무엇에 의인의 기준을 두고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 사람이 의인인지 또 의인의 집에 있는 보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잠언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의인으로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과 생활의 지혜를 가지고 분별함으로 영혼이 상하지 않게 되는 길을 말해주고 있다. 잠언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꼭 필요한 필수적인 생활의 지혜와 믿음의 길을 가르치고 알려주는 지혜서이다. 현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불안한 환경과 생각에서 부딪히고 하나님을 자신의 생각의 기준에서 믿어지면 믿고 안 믿는 자유
애굽 궁전에서 40년 동안 살았던 모세가 자신의 동족을 괴롭히던 애굽 사람을 향해 의분이 일어나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사실을 안 애굽 왕 바로가 모세를 죽이라 명령했다는 것을 듣고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의 훈련을 받게 된다. 애굽의 포로가 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애굽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통곡을 하며 기도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아뢸 때 하나님께 상달된 시간이 430년이 걸렸다. 상달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때가 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본문에서 사도들은 주님께 자신들에게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한다. 주님은 사도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명령할 때 그대로 사도들의 말에 순종하였으리라라는 뜻밖의 대답을 하신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사는 삶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율법이라는 속박에서 살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항상 모세의 율법을 준행하며 살았다. 행여 율법 중 하나라고 어기게 되면 그에 대한 형벌을 받게 될까봐 늘 조심하여 삶에 자유와 평안이 없는 사망의 법에 매여있었다. 본문의 말씀을 하신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강하고 이단들과의 말다툼을 피하고 진리 안에 거하며 자신을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서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디모데는 원래 마음과 정신이 약하고 체력도 건장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님의 은혜 속에 강해지라고 권면한다. 이 권면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갈보리 십자가에서 연약하고 쓸모없는 나를 위해 죽으심으로 생명을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강하라고 말씀한 것이다. 동시에 복음 전도자의 자세와 임무를 강조하고 있
눈물의 선지자로 불리는 예레미야는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 선지자로 선택되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조국의 멸망이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임을 선포함으로써 백성들로부터 오해와 비난을 받고 고난의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 가지와 끓는 가마 환상(13절)을 보여주시며 예레미야가 본 그대로 되리라고 선언하신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기울어진 끓는 가마는 북쪽의 큰 나라가 유다를 치기 위해서 내려올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유다는 결국 앗수르에 의해 함락당했다. 재난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로서 나타난 이 환상은 바벨론
마태복음 17장 24~27절은 가버나움에서 예수님께 성전세를 부과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주님의 교훈이다. 마태복음 16장 15~16절에는 시몬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오셨음을 고백한 것이다.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이시지만 무지한 이들은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성전세를 요구하였다. 성전세는 출애굽기 30:11절~16절에 근거하고 있다. 초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가지시고 이 땅에 오셨다. 그들이 성전세를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요한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미 말씀이 존재했음을 말하고 있다.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우주의 근원의 힘은 바로 말씀의 힘이다. 우주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신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되시는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말씀 한 마디에 천지가 질서대로 창조되었다. 말씀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말씀이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온 인류에게 빛과 영생이 되셨다. 본문은 천지는 없어질지
초대교회 시대의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가기도 하고 고난과 박해를 받았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베드로와 요한은 많은 사람에게 자신들이 믿는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핍박받는다. 다윗의 말씀을 인용하여 영생의 생수 곧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베드로는 학문이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너무나 유식한 자가 되었다. 이는 곧 성령이 내적으로 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사도들의 증언을 믿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만에 승천하셔서 10일
본문에서는 제사장을 죽이는 악한 도엑의 행위를 보게 된다. 도엑 때문에 제사장 85명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죄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양심에 찔림 없이 행동하는 죄인의 모습이 회개해야 할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지구촌 어딘가에는 전쟁과 재앙으로 힘들고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영혼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렵지만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주님이 돕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이 세대에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 안전한 보호 속에 살아가는 세대이다. 이
에브라임 지파 출신인 엘가나에게는 제일 사랑했던 첫째 부인 한나와 둘째 부인 브닌나라는 이름을 가진 부인들이 있었다. 첫째 부인 한나는 자식이 없었고 둘째 부인인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다. 브닌나는 자신이 아이를 낳았지만 남편 엘가나가 첫째 부인 한나를 더 사랑함을 보고 질투를 하여 한나를 괴롭히고 업신여겼다. 수모를 당하며 고통스럽게 있던 중에 마음이 괴로웠던 한나는 하나님께 나아가 자식을 달라는 기도를 했다. 한나는 아들만 주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확실하게 하나님께 서원을 했다. 성령이 임해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기운이 빠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