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근 열 목사

오늘 세계의 관심은, 인류의 평화에 있다. 그 중심에 세계교회가 있다. 이 평화는 전쟁에 의한 평화(팍스)가 아니라, 예수님의 벌인 평화(샬롬)이다. 그것은 두 가지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자기가 가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고, 또 하나는 정말 인류의 생사에 결정적인 위기를 실감하고, 이것을 사전에 막아보려는 예언자적 전통을 이은 인류 모두가 더불어 사는 지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평화는 핵무기로 대표되는 살인무기 생산과 무기 판매경쟁을 벌이는 것을 막자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무기경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하여 핵무기를 개발하고, 태평양을 향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계속해서 실험 발사, 한반도를 비롯한 이웃나라와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성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것은 한마디로 정상적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여기에 맞서 남한 역시 사드 배치를 이미 시작했으며, 미국은 1970년대 남한에서 사라진 핵무기 재배치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남한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자는 여론도 국민들 사이에 거세게 일고 있다. 또한 1분 만에 모든 것을 결정하는 미국 트럼프는 전술함 전대의 한국 파견을 명령했다. 그것이 바로 북한 김정은의 도발에 대한 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한반도를 둘러싼 군비증강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이, 일본 또한 군비증강에 들어갔다. 평화헌법을 바꿔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헌법을 바꾸었다. 일본 패권주의가 다시 부활한 것이다. 또한 중국은 남한의 사드 배치에 맞서 남한을 향한 경제보복에 들어갔으며, 많은 기업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한마디로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이 ‘평화’라는 이름아래 군비증강을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불교, 천주교 등 종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평화의 종교인 기독교가 먼저 평화를 노래하며, 한민족의 화해와 비핵화를 노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헌데 오늘 한국교회는 그럴만한 여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는 기대할 수 없다. 한국교회는 부활의 아침, 한반도를 넘어 세계평화를 위해 한국교회가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해서 답해야 한다.

인간의 역사는 이성적이지 못했다. 비이성이었다. 세계는 원시시대부터 ‘평화’란 이름으로 전쟁을 계속해 왔다.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서 2차 대전을 종식시켰다. 이 원자폭탄은 순식간에 10만명을 죽였다. 당시 세계는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그 후 70년이 지난 오늘, 세계는 그날을 잊고, 역으로 계속해서 한 번에 수백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가공할 무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지금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백만배 이상의 파괴력을 가진 핵무기를 생산하고 있다. 그것은 1천억이라는 인간을 살상할 능력을 가졌다. 여기에다 원자력 발전소가 세계 곳곳에 세워져 언제, 어디서 사고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지 모르는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당시 원전사고와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인류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세계는 화약고 안에 있으며, 언제 어떤 사고로 인해 수많은 피조물들이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있다.

이성을 잃어버린 한사람이 단추 하나만 누르면 인류 모두가 멸종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상황에서 인류는 무엇이라고 변명 할까. 오늘도 이러한 핵무기는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으며, 발전하고 있다. 무기가 발전하면서, 과거에 생산된 재래무기를 어디에 버려야 할지도 고민이 아닐 수 없으며,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 부활절 아침에 우리 모두 평화를 노래하자.

군남반석교회•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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