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오늘 우리사회는 자신의 안일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이다.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 이웃을 죽이는 사회, 사랑하는 아이를 죽이는 사회가 되었다. 소돔과 고모라보다도 더 음란한 사회가 되었다. 모두가 자신의 안일을 위해서 산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다.

내가 앞서기 위해서 상대방을 가차 없이 짓밟아버린다. 모두가 자기만을 섬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기를 하나님으로 삼는다. 모두 자기에 대한 우상숭배자가 되었다. 자기 이외에는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 우리는 1인의 웃음과 안락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과 땀을 흘리는 것을 본다. 우리에게는 이웃이 없다. 모두가 경쟁의 대상이며, 넘어야 할 산이다. ‘나’만이 있다.

그것은 개인주의와 개별교회주의에 빠진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나’ 아니 ‘내 교회’ 아니면 안된다는 의식이 팽배해져 있다. 그렇다보니 다툼이 자주 잃어난다. 최근 보수단체의 다툼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나’만을 고집하다가 일어난 다툼이다. 이 다툼은 끝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다.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던 지도자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법원은 직무대행을 따로 파송했다. 이 단체를 보면 한국교회의 치부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예수님은 이 세상에 죄 없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이 세대의 범죄에 대해서,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최근 최태민-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인해 탄핵과 구속된 박근혜 전대통령을 향해 돌을 던지는 자들은, 과연 자신은 자유롭다고 말 할 수 있는가? 국민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불의한 정권을 위해서 기도해 주며, 정당화 해 주지 않았던가. 그를 선택할 때, 한국교회는 그의 가문과 전력에 대해 전혀 문제 삼지를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를 감싸기 위해서 성직자 가운과 후드를 착용하고 십자가를 들었다. 그리고 불의한 정권을 향해 계엄령을 선포하라고 했다.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고, 감싸는 것, 또 지배하는 것은 구조악의 결과이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류에게 뿌리를 내린 죄의 구조악은 인류를 지배하게 됐다. 온 인류는 모든 죄 아래 있다는 말이다. 이 세대가 저지르는 추악한 범죄에 대해서 우리는 공범자이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여러분은 이방사람처럼 헛된 생각을 가지고 살지 말라”(에베소서 4장 17절)고 했다.

이 성경말씀에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확실히 들었다. 예수님 안에 진리, 그대로를 예수님 안에서 배웠다. 그러므로 옛 생활을 따르는 낡은 인간성, 곧 정욕에 속아 썩어져 가는 옛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이 새로워 져서 거룩함을 지으심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본 뜬 새 인간성을 입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예수님 안에서 새 인간성이 나타났다. 예수님은 “세상에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했다. 즉 예수님은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장애인, 혈우병자, 귀신들린 자 등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옛 인간을 증오하던 인간이었다면, 예수님은 사랑의 인간이었다.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을 극진히 사랑하셨다. 그가 지신 십자가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고난의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사랑의 표시이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배우고, 예수님 안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그리고 어떻게 실천했는가?에 대해서 자신을 향해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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