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성 헌 목사

과도한 욕망과 충족, 소비문화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지구의 미래를 위협한다. 분명한 것은 물질적인 풍요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다. 이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오늘날 세대의 무책임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무너지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한국교회는 수명을 다한 영미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의식을 느낀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국민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간섭을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성애에 관한 문제이다. 국민 모두는 동성애가 국민건강과 윤리성, 도덕성, 성의 가치 상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위배 등에 대해서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보수적인 교회의 목회자와 여기에 관여된 전문 강사들만 동성애를 들고 나와, 국민과 기독교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가 전면광고로 국민일보에 제공한 ‘가정성결주일 샘플설교’는 국민 모두가 이해하지를 못한다. 영국교회가 왜 수명을 다했는지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분열과 갈등에 앞장섰던 인사, 국민갈등을 부추겼던 인사, 이념간, 세대간의 갈등을 조장했던 교회가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단합을 강조하고 나섰다. 사회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보수적인 교회의 목회자들이, 의제가 무엇이 되었던 사회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도 개인적인 구원만을 강조해온 보수적인 교회의 목회자들이 집단적인 사회구원을 말했다는데 기독교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된다. 집단적 사회구원을 위하여 교인들을 향해 헌금을 하자고 한다. 지금까지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개인과 개별교회를 위해서 헌금을 드려왔다. 이 헌금으로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맘몬교회당을 경쟁적으로 건축했고, 하나님을 호화로운 성전에 가두었다. 그것은 업적주의가 한국교회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전통은, 사람은 공로가 아니라,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복음의 본질과 교회의 정체성, 그리고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자고 한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가 돈에 너무나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동성애반대운동도 부자교회가 돈을 내면 실무자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또 야심찬 세계대회도 준비했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의 성장이 멈추고, 수명을 다한 영미교회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기는커녕, 국민들이 전혀 공감하지를 못하는 일들을 붙잡고, 사회를 향해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몇몇 교회지도자들의 이러한 돌출된 행동은, 결국 한국교회도 종교간의 갈등을 일으키고, 국민과 교회간의 막힌 담을 더욱 두껍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한편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서 낙관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과거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 반신적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보수적인 기독교는 그와는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것에 의한 대량소비만이 국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한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신화를 믿는 사람치고 보수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보수주의의 특성인 탈공동체화, 권력과 도덕의 일탈, 탈금욕주의,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한 과도한 낙관주의 등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강화해 나가고 있다.

탈공동체는 권력과 도덕의 일탈을 가져오고, 과학기술에 대한 낙관주의가 금욕주의적 세계관을 무력하게 만든다. 이 반대의 도식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아무렇지 않게 남북한 전쟁이 일어나 100만명이 죽어도 괜찮다고 한다. 또한 남북한의 비핵화를 노래해야 할 목회자들의 힘에서 핵무장을 주장한다. 그렇다보니 보수적인 건물마다, 마을마다 십자가탑은 평화의 상징이라고 누구도 보지를 않는다 오히려 분열과 갈등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소금의 맛도 잃어버렸다. 

속초 성암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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