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마가복음 4장3절)

배고픈 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빵이 중요하다. 사실 육체들 가진자들의 일차적인 관심은 물질이다.
그래서 물질이 풍성할 것이요. 물질을 풍부하게 제공하는 자를 메시아로 모실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이야기 속에서도 겨울에 먹을 양식과 땔감, 그리고 김장만 준비하면 행복하다고 했다. 하나님도 아브라함이 떠돌이 생활을 할 때, 그에게 필요한 땅을 약속하셨다.

약속된 가나안 복지로 가던 중 먹을 것이 없어 아우성치는 이스라엘 백성, 출애굽공동체에 만나와 석정을 주지 않았던가. 사람에게 육체를 주었다면, 그 육체를 보살피기 위해서는 물질을 주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 물질은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광야에 널려 있는 돌덩어리더러 떡이되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가 뒤를 따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육체를 가진 인간은 물질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주셨다. 떠돌이 아브라함에게는 땅을 약속하셨다. 사람이란 땅을 갈아 그곳에서 나오는 곡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셔야 한다. 삶에 필요한 의식주를 만들어 삶을 즐겨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활용하여 삶을 영위할 때, 그는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 하나님께 찬양을 올릴 수가 있다.

그렇다고 물질을 많이 생산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 풍년이 들어 많은 물질을 생산해도 여전히 빈곤에 시달리는 농민들을 보았다.
농민들은 피와 땀을 흘려 농사를 했으나, 노민들은 그 땅의 주인이 아니었다. 그 땅의 소출의 주인은 도시 기득권자들이었다. 농민들은 그들의 노예나 다름 없었다. 그들은 언제 농통에서 쫓겨나 떠돌이 신세가 될지 몰랐다.

젊은이들은 열심당원이나, 강도떼가 되었다.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은 거짓떼가 되어 거리를 방황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천시하는 말단 세리나, 부정하다고 하는 수공업에 종사했다. 젊은 여성들은 몸을 팔았다.

하나님은 이들에게도 땅을 주셨는데, 그들의 땅에서 쫓겨나 목자없는 양처럼 헤메였다. 예수님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단강가의 돌들이 떡이 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다.

이것을 아셨기 때문에 에수님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사람이 육체를 유지하는데 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셨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삶에 축복이 있는 것튼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나오는 말씀에 따라야 참된 축복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룩되려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에게 명생의 길을 물었던 율법학자가 말한 “네 마음을 다라고 내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여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 인정공동체를 이룩할 때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다윗 왕 이래로 유대나라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힘으로 자기 배만을 채우면서 살았을 때 사회가 패망으로 치닫는 것을 예수님은 명확히 보신 것이다. 그래서 물질적인 탐욕이야 말로 바벨탑을 상징하는 악이다. 그것은 오늘 인류사회에서 첫 번째로 제거되어야 할 악, 탐욕이다. 동시에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삶을 살 때, 평화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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