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복음 내용과 교회 질서의 파탄에 대항해서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교회개혁의 횃불을 들고 투쟁을 시작한지 500년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한다고 야단법석을 떤다. 중세교회를 닮아가는 한국교회가 루터의 종교개혁을 말할 수 있는가(?)

루터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려고 한 ‘교황의 수장권’ 문제, 교황만이 성서를 바르게 해석 할 수 있다는 ‘교황무오설’, 예수께서 제정해 주신 두 개의 성례전만을 인정하고 카톨릭교회가 임의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던 5개의 성례전, 이것은 성서에 기초하지 않은 것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하며,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또한 교황만이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는 초대교회의 의회주의 파괴를 공격했다.

루터가 이렇게 성서와 공의회 위에 군림하는 교황, 그리스도 대신 수장권을 주장하는 교황을 비판함으로써, 교회의 치리나, 교리, 제도의 규정은 성서로 환원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교회의 제도를 비롯한 규정, 치리가 성서로부터만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말하는 한국교회가 성서만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치리하고 있는가. 오늘 한국교회는 500년 전 중세교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교회 안에서 루터가 말한 ‘오직 은총으로만’, ‘믿음만으로‘ 교리와 제도를 만들고, 치리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 중심으로 교회 규칙과 내규를 만들고, 제왕적 목회자에게 반기를 드는 교인들을 감정적으로 치리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여기에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아 버렸다. 그리고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교회는 없다. 그러면서 목회자와 교인들의 입에서는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헌금의 액수로 ‘믿음의 척도’, ‘하나님나라의 척도’를 평가한다. 또한 목회자들의 윤리적 타락은 극에 달했으며, 목사가 사랑해서 결혼한 부인을 살해하고, 자녀를 살해하는 일이 한국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또한 십자가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 꼭대기에 매달아 언제 떨어져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모습이 성서와 공의회 위에 군림한 교황, 초대교회 의회주의를 무력화 한 교황과 무엇이 다른가.

한국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이벤트적인 사업을 벌이기에 바쁘다. 한국교회가 루터의 종교개혁만 말 할 때는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기독교는 영미 교파주의가 그대로 뿌리를 내리고, 분열과 갈등을 거듭하면서, 300여개의 교단을 탄생시켰다. 그러면서 한국교회가 통일을 이야기 할 수 있고, 민족의 화합을 말 할 수 있는가. 이런 연유에서 그런지는 몰라도,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 동포를 적대적으로 보며, 한반도의 비핵화와 반전을 반대한다. 또한 자신의 신앙과 신학사상이 다르면, 무조건 이단 및 사이비로 규정하고, 대결한다. 한마디로 이웃교회와 이웃교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웃종교를 사탄의 세력으로 몰아붙인다.

이것은 500년전 종교개혁자 루터도 마찬가지였다. 루터는 종교개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상적 방향을 가진 개신교 진영의 집단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1525년 농민전쟁의 와중에서 루터는 영주편(가진자)을 들었다. 루터 역시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예수님의 아우성 소리를 듣지 못했다. 농민들의 편에 선 종교개혁 좌파인 토머스 뮌처 등과 대결하며, 성만찬 문제(기념설과 실제설의 차이)를 둘러싸고 개혁교회 진영의 칼뱅 등과 갈등을 빚었다.

루터, 열광주의 집단들과 갈등

루터가 이론과 실천면에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대결했던 집단은 ‘열광주의 집단’이다. 종교개혁 당시도 개신교 세력들이 여러 분파로 나누어져, 분열과 갈등의 모습을 보였으며, 반율법주의자인 칼슈타트를 비롯한 주관적 십자가 경험의 신비주의자인 토머스 뮌처, 카톨릭 세례와 유아세례를 부정한 재세례파를 정죄했다.

루터는 “복음을 받아들인 신자들도 지상에서 살아가는 한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또 그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며, 복음에 이르게 하는 율법은 항상 존재해야 한다”며, 반율법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한 칼슈타트에 대해서 강력히 대응했다. 루터에게 있어서 율법 없는 복음, 복음 없는 율법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이는 한마디로 루터의 “인간은 ‘죄인이면서, 의인’”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인간은 항상 죄인이므로 율법아래 있고, 의인이므로 복음아래 있다는 것이다. 육법 없는 복음을 주장한 칼슈타트와 그의 집단은 루터에 의해서 뷔르텐베르크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칼슈타트는 율법을 부정하고, 종교개혁 운동에서 극단적인 방향을 취했기 때문이다.

또한 루터는 ‘주관적 십자가 경험의 신비주의’자인 토마스 뮌처와도 맞섰다. 뮌처는 농민운동의 지도자 중 하나였다. 사회혁명가였다. 그는 십자가의 수난, 즉 영혼이 지옥의 고통을 경험함으로서 궁극적으로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것만을 추구한 신비주의자였다. 이러한 신비주의적 열광주의가 그를 농민들의 농민혁명에 참여하게 했다.

루터는 뮌처의 주관적 십자가 경험의 신비주의가 지향하는 것, 즉 탈세상적인 것을 일차적으로 부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의 종교개혁 조치에 에크하르트를 비롯한 타올로 등의 독일 신비주의자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 자신은 신비주의자가 되지 않았다. 루터는 농민전쟁 초기 영주들과 농민들에게 보내는 권면의 글을 통해 대립하는 그들 가운데서 화해와 평화를 시도했다.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양자 간의 폭력이 계속되자 영주 편에 서서 농민들을 비난하는 글을 썼다.

“신하들, 특히 그리스도의 신하들은 정치적 상위자의 억압에 대항해서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되고 오직 십자가의 수난을 감내해야 한다”

재세례파는 종교개혁 당시 카톨릭 세례와 유아세례를 부정했다. 개신교의 교인들은 성인이 되어 다시 세례를 받을 것을 요구하고, 1524년부터 주동자 중 하나인 후버 마이어가 재세례를 받음으로부터 시작된 운동이다. 이들은 국가교회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내적 빛’이라는 신비적인 교리를 강조하며, 신약성서에서 신앙생활과 윤리의 준거로서 주로 ‘산상설교’를 내세웠다. 여기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농민전쟁에 참여했다. 재세례파는 그 후 네델란드 메노 시몬의 인도를 받아서 이른바 ‘메노나이트 종파’, 평화교회 가운데 하나로서 오늘날까지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유럽에서 평화운동의 선봉장이 되기도 했다. 루터는 재세례파의 운동에 동의하지 않았다. 세례는 어떤 교파에 의해서 어떤 방식으로 받았든지 유효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유아세례를 인정했다.

열광주의 다양한 형태로 존재

열광주의는 종교개혁 당시나, 오늘이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고등종교에서도 존재한다. 종교적 열광주의는 종교가 다르다 해도, 그 내용과 특성에 있어서 유사한 점이 많다.

열광주의는 내면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성향이 있다. 우선 이들의 신앙생활에서 추구하는 내면적 경향은 강한 탈세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때문에 세상적인 것에 대해서 적대적이다. 이러한 내면적 성향의 교회는 운동으로 발전하지 않고, 소종파를 이루어서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박대선 장로의 신앙촌운동, 문선명의 통일교, 이만희의 신천지운동, 이장림 등의 시한부 종말론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오늘 한국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으며, 특정한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모인 집단들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 한국교회의 상당수는 열광주의에 사로잡혀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으며, 여기에 빠지지 않은 교인들에 대해서 믿음이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열광주의의 내면적 성향은 다시금 신비주의적 성향을 떼게 되어 무엇인가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을 깨닫고 경험하는 것만이 신앙생활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이들은 신앙생활에서 비전을 본다든지, 또는 방언을 한다든지, 기적을 행하고 보는 것에 몰두하게 됨으로써 일상적인 삶이나, 신앙생활을 벗어나려고 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이러한 신비주의 성향은 특정 교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일반에서 나타난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한국의 일부 교회는 방언을 비롯한 환상, 기적, 예언, 영서 등을 말하며, 마치 이것이 믿음이고, 신앙생활의 전부인냥 호도하고 있다.

열광주의는 매우 주관적, 배타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열광주의자들은 대부분 개관적이고, 입증 가능한 내용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이러한 주관적인 성격이 실천적 영역에서 매우 배타적이다. 일단 교인들이 열광주의 집단에 소속되면, 정상적인 가치판단의 능력을 상실하고 일상적 사회생활에서 장애를 받게 된다. 이 같은 사실들은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생활현장이나, 교회에서 경험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열광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대중들 속에서 외치며 전도하는 형태는 열광주의 신앙이 갖는 배타적인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자기들만 구원 받을 집단에 속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지옥에 갈 악마의 자식이라는 확신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극단적인 배타주의가 지배하고 있으며, 교회의 신뢰도를 한없이 추락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균형 잡힌 판단을 하지 못한다. 특히 열광주의자들은 자기우상화와 카리스마적인 인물을 우상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얼마 전 성남에 위치한 대형교회의 부목사가 ‘담목(담임목사)용비어천가’를 대놓고 불러 구설수에 올랐다.
이에 대해 한 크리스천 네티즌은 “오늘 S교회 부목사의 설교는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신천지를 비롯한 각종 이단들과 개신교 정통 교단과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그 아무리 ‘님의 침묵’ 을 비판해봐야 세상은 이단과 우리를 동일선상에서 이해를 하기 시작했어요. 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나음’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삶? 교리? 개그? 정치? 돈에 대한 정결? 뭔가 하나라도 있어야 큰 소리를 칠 것 아녀요”라고 쓴소리했다. 이를 비난하는 글은 <기독교뉴스>에 그대로 실렸다.

이밖에도 열광주의는 사회혁명이 강하다. 열광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판단하게 한다. 특히 이들이 적극적인 삶에서 세계 부정적인 것을 극복하려고 할 때는 거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그것을 극복하려고 한다. 이들의 배타적인 성격은 자기와 생각이 다르거나, 실천이 다른 집단들과 같이 지내지 못하게 하고, 그것을 적대시하거나 때로는 그것에 대해서 무력행사를 하게 만든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