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참여하자

사순절이 시작됐다.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부활절인 4월1일 40일 전에 시작된다. 그리스도인 모두는 이 기간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며, 여기에 참여해야 한다. 일부는 참여하고 있다. 경건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한다며, 40일 동안 금식에 들어간다. 3.1만세운동 99주년도 2018년 사순절 기간에 맞았다.

한국교회는 3.1만세운동을 기념한다고 하면서, 고난당하는 민족의 아픔이며,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서 민족운동을 일으켰던 이 땅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3.1만세운동과 사순절기간에 일본국가주의에 굴복한 기독교 민족대표 16명만이 보인다. 한국교회는 해마다 3.1만세운동을 기념하면서 이렇게 해 왔고, 또 그렇게 할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이런 점에서 사순절을 맞는 3.1만세운동 99주년은 새롭게 평가되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3.1만세운동 99주년과 사순절 기간에 남북한의 적대적인 관계를 조성하고,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의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발언들이 목회자들의 입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서 이것을 애국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참담하다.

그리고 어느 목사의 입에서는 “만주벌판에 독립군은 없었고, 원자탄 2발이 한민족을 해방시켜 주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샬롬(평화)’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를 않고, 군국주의자들의 ‘팍스(평화)’를 말하며, 한반도를 긴장상태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을 ‘간첩’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한마디로 행동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사순절 기간에 절제의 생활을 하며, 도덕적 윤리적으로 깨끗이 해야 한다. 일부 진보적인 목회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철거민, 일일노동자들의 아픔에 동참하며, 이들의 권익을 위해서 힘을 보탠다. 일부는 이 기간에 금식하고, 금식비를 모아 가난한 이웃을 돕는다.

이러한 활동에 대해 생각 있는 신학자와 목회자는 이것이 교회가 예수님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교회의 신앙공동체는 40일 동안 기도회를 갖는다. 이 기도회 및 성회에서는 교인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지금 맘몬과 바벨에 길들여진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이것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헌금의 액수라고 말한다.

오늘 한국교회의 구석구석을 들여다가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화해하라,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잊고, 한국교회 곳곳에서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대표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고소고발사건이 끝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교회 지도자들은 3.1만세운동 99주년을 맞아 보수와 진보간의 적대적 관계를 조성하고, 새로운 정부 전복을 획책하고 있다. 개교회들은 교인들 간에 다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어디를 봐도 성한 곳이 없다. 그러면서 목회자들은 교인들을 향해 자신도 실천하지 못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참여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부 목사는 여러 모양의 행사를 핑계 삼아 호텔 모임을 갖고, 한 끼에 수 천 만원의 식대를 지출한다.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아닌가. 말과 행동이 정반대로 흘러가는 모습은 한마디로 부끄럽다. 부활의 계절을 앞둔 고난의 계절에 할 말을 잊게 한다. 국민 분열, 교회분열, 교인분열을 일삼는 한국교회가 하나님나라운동을 말할 수 있겠는가. 과연 목회자들이 강조하는 하나님나라는 있는가(?)를 생각해야 할 정도이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이웃들과 함께하는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교회를 향해 가장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 교회를 세우라고 는 것이다. 예수님은 혼자 하늘나라에 들어 갈수 없다고도 했다.

하나님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라 함께 가는 곳
고난당하는 이웃을 외면하는 하나님이라면 교회에 다니지 않겠다

하나님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장로교신학대학교 김철웅 교수는 “하늘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다”고 했다. 한마디로 개인구원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집단구원을 철저하게 부정한 것이다. 그는 또 소수자의 인권을 철저하게 짓밟는 목소리도 냈다. 미국이 GM을 철수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없애 버리겠다는 것이며, 우파 시민단체들이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국가해체 운동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을 간첩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국가해체 내란 음모를 꾸민다. 그런 것을 보면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옛날 군부독재정권 아래서는 상상도 못할 말을 서슴없이 한 것이다.

사순절 기간에 3.1만세운동을 철저하게 이용해 나라는 어떻게 되어 가든 보수집결을 외친 것이다. 목사의 입에서, 아니 대학 교수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3.1운동을 계승한다면서, 하는 말 치고는 너무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것이 기독교인 모두의 생각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의 아픔과 고난을 몰각하는 기독교라면, 하늘나라에 혼자만 가고, 대한민국 국민들과 우리의 가족과 형제들이 함께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면, 기독교인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참담하다 못해 분노한다. 영미 제국주의 신학과 식민지신학, 지배자의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교회 보수적인 목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오늘 보수적인 목사와 교인들은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2018년 사순절 기간에 3.1만세운동 99주년을 맞았다. 이들은 3.1만세운동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영향아래에 있는 국가의 민족을 대상으로 한 민족자결주의이었다.

일본식민지 영향 아래 있었던 대한민국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헤이그에 간 이준열사가 왜 자결했는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대한민국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과 일본의 방해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이런 아픈 역사를 교회지도자들은 호도하며, 민족을 왜 배반하는가.

그렇다고 3.1만세운동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영미의 지배이데올로기적인 신학과 식민지신학, 제국주의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목사, 그 영향을 등에 업고 교회와 국가를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려는 목사,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내려놓지를 못하는 목사, 민족의식을 몰각하고 외세를 앞세워 자신의 입지를 키워보려는 속셈을 가진 목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2018년 사순절, 3.1만세운동 99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남갈등과 사회적 갈등을 부추겨 또 민족분열을 획책하고 있다. 분명 3.1만세운동은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 한민족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한 이 땅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민족운동이며, 항일운동이었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보잘 것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한민족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민족운동과 독립운동, 항일운동을 벌였다. 이로 인해 7천3백여명이 체포되었으며, 이 중의 200여명이 옥사했다.

어둠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 되라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중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 한국교회, 아니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을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모두가 개인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이로 인해 민족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외교적 등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한마디로 세상은 빛이 없다. 어둠뿐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세상의 빛이 되라고 했다.

가정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하다. 자살이 생기고, 가정을 이탈하는 아이들이 생기하고,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곧 사회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한마디로 세상은 참담하다. 그렇다고 부자라고 해서 가정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부자들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 가진 것을 지켜 줄 사람, 더 부유하게 만들어 줄 사람을 찾는다. 정치적으로도 이런 사람을 선호하며, 지도자로 선택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우울하고, 가난해도 우울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순절을 시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통해 빛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은, “부자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 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

바꾸어 말하면 부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이다. 한국 개신교 역시 너무 가진 것이 많아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교회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 신을 성전에 가두어 버렸다. 신은 세계에 없다. 그래서 신을 교회에서 신이 없는 세계로 불러내야 한다고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말한다.

오늘의 세계는 불안정 속에서 있다. 언제 어디에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특히 한반도 둘러싸고 일어나는 주변국들의 적대적인 관계는 한반도가 제3차전쟁의 진원지, 화약고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것은 진보적인 인사나, 보수적인 인사 모두의 생각이다. 여기에다 일본의 아베정부는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전범국가인 일본은 제2차 대전으로 망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통해 많은 부를 얻어 복구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가진 일본이 한반도의 평화를 바랄 이가 없다.

이제라도 이러한 난국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인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노래해야 한다. 그리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인 예수님의 삶의 자리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 그곳은 분단의 현장이며, 평화통일운동이 아니던가. 우리는 평창올림픽에서 보았다. 애국가를 누가 불렀는가.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애국가를 불렀다는 사실. 이것은 이방인이라도 함께 화해하고, 평화를 정착하라는 메시지가 아닌가. 같은 민족인 북한의 동포들과 화해하고, 평화를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 이사야나, 예수님은 떠돌이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을 선포하지 않았던가.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한다. 고난에 참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한마디로 가짜이다. 이들은 자기 밖에 모른다. 고난 속에서 희망을 말하는 사람만이 참 그리스도인이다.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예수님의 고난을 잊고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 고난당하는 민족 속에서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천국’, ‘천당’, ‘구원’, ‘성령’, ‘복음’, ‘민족복음화’ 등을 외치며,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 3.1만세운동 99주년과 사순절을 맞은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예레미아 선지자는 “땅은 공허하고, 혼미하다”고 했다. 사회의 질서가 무너진 한국교회, 사순절을 맞은 한국교회, 3.1만세운동 99주년을 맞은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을 향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3.1만세운동 99주년을 맞은 한국교회,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한국교회, 2018년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한국교회의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아니 3.1만세운동을 주체적으로 감당한 한국교회가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 한민족의 하나님을 고백하지 못한다면, 분단된 민족의 중심에 교회를 세우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어둠뿐이며, 한민족에게 있어서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고난당하는 이웃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을 때 교회가 성장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