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찬 목사

한국교회가 주관한 3.1만세운동의 기념식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말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민족대표 33인중 16인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이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어느정도 3.만세운동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의문이지만, 분명한 것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1차세계대전 패전국의 식민지 아래 있던 민족을 향한 민족자결주의였다는 사실.

한민족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헤이그 국제회의에 대한민국 대표로 갔던 이준 열사가 왜 자결을 선택했는가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당시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은 아니었지만, 국제연맹의 상임이사국으로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대한민국은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아래 있지를 않았다. 오늘 한국교회는 이같은 역사를 몰각하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세워 마치 3.1만세운동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데 문재가 있다.

민족대표 기독교인 16인을 3.1만세운동의 전명에 내세우는 것 역시 민족의 역사를 몰각한 처사이다.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3.1만세운동의 현장에 없었다. 이들은 한 음식점에서 돌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일경이 오기를 기다렸다. 독립선언문을 파고다공원에서 낭독한 이는 경신고등학교 학생이었으며, 독립선언문을 전국에 배포한 이들 역시 서울에 유학온 학생들이었다. 또 무명옷고름 입에 물고, 검은치마 휘날리이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기독여성과 아낙네, 걸인, 기독농민, 창녀들이었다는 사실.

학생들은 “민족지도자들을 믿을 수 없다”며, 3월5일 서울역 거사를 따로 준비했다. 이날 평양을 비롯한 전국의 학생들이 서울역으로 몰려 왔다. 이들은 서울역 거사를 치르고, 고향으로 내려가 당시 최대조직이었던 교회로 파고들어 3.1만세운동을 계속해서 일으켰다. 유관순 열사는 당시 공주선교부 소속의 장로의 조력으로 음력 3월1일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제암리교회를 비롯한 많은 교회와 시민들이 3.1만세운동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정교분리를 내세워 민족의식을 철저하게 방해한 선교사들은 자국에 보낸 선교보고서를 통해 “한국에서의 3.1만세운동은 폭도들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이다”고 보고했다. 전체선교사들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선교사들은 일본의 만행을 선교부에 보고하려고 했으나, 좌절되는 아픔도 겪었다. 분명한 것은 선교사들이 먼저 주창한 정교분리는 “한민족이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선교사들은 선교와 교육사업, 계몽사업에 힘쓴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그리고 한민족의 민족의식 고취를 철저하게 봉쇘다.

그럼에도 한민족의 마음에는 민족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민족의식이 3.1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식을 몰각한 이 땅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역사를 왜곡시키면서, 아니 일본이 망하고 세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미국을 찬양하며, 국민들에 의해서 선출된 새정부를 빨갱이정부, 좌일정부이라고 비난하기에 바쁘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교회가 3.1만세운동을 새롭게 조명해야 문제이다. 3.1만세운동은 한국교회가 중심이 된 자주적인 민족운동이며, 독립운동이고, 항일운동이다. 이런 3.1만세운동에 담긴 의미를 몰각한 기독교지도자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막말은 한마디로 참담하다. 안타깝다. 정말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안타깝다. 더 이상 한국교회의 비참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말자.

예장 한영 총무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