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는 일을 하시고, 이렛째 되는 날 되는 날 휴식을 가지셨다. 하나님의 휴식은 창조적 기쁨과 생명이 가득한 안식이었다. 갈등과 대립이 없는 평화로운 안식이었다. 이 안식은 창조의 안식이며, 인류 역사의 목적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사람에게 자신의 안식을 약속하셨다(이브리서 3장과 4장)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날에 하나님의 평화로운 안식을 기대하며 산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ㅇ는 이 안식을 미리 맛보며, 이 영원한 안식을 잇대어 산다. 생명을 가진 모든 사람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휴식을 취하도록 되어 있다. 일이 없는 휴식은 죽은 것과 같다. 휴식 없는 일은 기계와도 같다. 일과 휴식은 사람에게 있어 삶의 본질이며, 가칭이다. 노동은 삶을 지탱해 주고, 삶을 풍부하게 해 준다.

하지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노동에만 있는 것처럼 노동을 절대화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벗어난 것으로 옳지 않다. 사람의 삶의 의미와 가치는 노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을 넘어서서 하나님과 더불어 휴식을 취하는데 잇다. 하나님의 안식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리며, 이웃과의 이해타산을 넘는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일과 노동만을 생각하며, 일과 노동에는 의무와 요구만이 따른다. 일과 휴식이 함께 수반될 때 자ㅣ유롭고 창조적인 행위;가 된다. 보람있는 작업이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 노동은 하나님의 창조사업에 참여하는 기쁜 일이었다. 노동은 생명의 표현이었다. 자유롭고 창조적이었다. 그러나 인류가 타락하여 자기중심에 빠질 때 억압과 수탈의 관계가 성ㄹ힙되었다. 노동이 수탈의 대상이 되었을 때, 노동은 고달프고 지겨운 것이 되었다. 노동이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먹고 살기 위해 품을 팔고, 종살이하고 강제 부역을 당해야 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동의 가치와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휴식없는 노동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리는 것은 물론, 생명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휴식없는 노동자를 위해 안식일법이 제정됐다. 안식일법은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삶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종과 주인이 따로 없는 하나님의 안식을 가르친다. 억압과 수탈, 증오에서 해방돼 주인과 종이 서로 화해하는 하나님의 안식을 가르치고, 증거하기 위해 안식일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안식일법은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율법규정이 되어 버렸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는 안식일법을 내세워 노동자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하는 것을 철저하게 방해했다, 왜 바리새파는 안식일을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선한 일을 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만큼 중요한 일이엇을까?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 총독 빌라도의 통치 아래 있었다. 사두개파와 바리새파가 주도하는 종교국가였다.

유대사회는 유대교의 율법에 의해 지배되었다. 이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만이 유대민족이 살길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율법을 지키는 것은 로마제국의 헬레니즘식 외세문화에 대응하여 민족적 주체성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은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을 냈고, 율법을 어기는 자들에게는 가혹했다.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특권층들은 율법체계를 통해 부와 권력을 누렸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안식을 가로막는 모든 인간들과 모든 정치, 종교체제에 저항했다. 예수님의 저항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가 주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적 목적, 인류 역사의 목적이 완성되었다. 오늘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안식에 우리를 초대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안식을 가로막는 악한 세력과 싸우고 있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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