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선 규 목사

사람은 누구나 흔들리는 것을 좋아 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흔들리면 순간 불안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제 세상의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이미 땅이 흔들리고 공중에서 바다에서 그 징조가보이고 있다. 경제가 흔들리고 도덕이 기초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 오늘 내일의 일만이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요즘은 교회마저 흔들리고 있다. 개척 교회가 예전 같지 않다고들 아우성이고 중형교회도 전도가 예전 깉지 않다고 한다. 대형 교회들조차 교회 내분으로 인한 진통이 만만치 않은가보다. 그러면 왜 교회가 흔들리는 것일까? 그것은 기초가 바르지 않아서 그렇다. 찬송가 가사 “시온성과 같은 교회 그의 영광 한없다”. 허락하신 말씀대로 주가 친히 세웠다. 반삭 위에 세운 교회 흔들자가 누구랴?

모든 원수 에워싸도 아무 근심 없도다. 라는 가사처럼 올바른 기초 즉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는 감히 누구인들 흔들자가 없다. 이러한 교회가 흔들림이 있다면 무엇인가 기초가 제대로 다져지지 않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뿌리가 얕은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역사 소설을 읽다보면 다음과 문장을 볼 수 있다. '말발굽에 밝히는 자 부지기 수더라 “전쟁을 하다보면 한쪽은 승승장구요 또한 쪽은 그 쫒기는 상황에서도 일패도지(日敗途地)라 표현되었음을 보게 된다.

이름 없는 무명초로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회고해 볼 여유조차 없이 먼지 속에 휩싸인 채사라지는 모습이 서글픈 심정이었다. 승승장구 하던 군사들도 어느 때 인가는 패잔병의 신세로 전락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한 시대를 구가하던 영웅호걸들도 한순간의 실수나 잘못된 판단으로 별 수 없이 그 모든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목불인견 이었다.

느헤미아 5:5절이 떠오른다. ‘우리는 제 아들 딸 들을 종으로 팔아먹는 신세다.

딸들이 짓밟히는데도 우리는 어떻게 손쓸 힘이 없구나? 귀향 이후의 이스라엘의 재건과정에서 겪었던 사회 불의에 대해 부르짖고 있다. 현재 우리사회를 보자. 제왕적인 대통령의 지휘아래 저질러진 그 불의는 차마 귀담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 있다. 그리고 정치에 몸담고 있는 선량들은 그런 불의에 불감증 증세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말로는 정의를 외치고 있으니 그저 참담하기만 하다. 진리의 터전위에 세워진 교회조차 정의와 하나님의 의를 외치는 소리는 모기 소리만큼이나 듣기가 어려운 시대라면 과언이랄까? 불의에 대해 외치는 자 보기 힘들고 오히려 그들의 불의한 헌금의 출처는 살펴보지도 않은 채 축복의 음성은 크게 들리는 듯하다.

터가 무너지면 자칭 의인들이라는 사람들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 할 일도 없는 천박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이 아닌가? 동성애 문제, 젊은이들의 탈선. 가정의 해체, 미투 문제로 인한 신음소리가 심상찮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토라 하나님의 말씀 씀을 듣는 중에 산 아래 있던 백성들은 아론을 선두로 보이는 신을 만들자는 공론하에 금을 모아 금 우상을 만들었든 것이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이는 형상의 신을 만든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는 출애굽의 은총을 망각 한 채 맘몸 신을 섬기려 하지 않나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가나안의 희망은 희미해지고 맘몬 신을 섬기려 하지 않는가

오늘의 교회는 애굽을 동경할 것인가 가나안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아론계통의 계열에 설 것인가 모세 계통의 반렬에 설 것 인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기회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오늘 선택만이 남아 있다. 금송아지 앞에 백성이 일어나서 춤추고 더들고 향락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황금 우상 앞의 교회 모습을 상상해 본다. 분명한 것은 썩어질 육체적 욕망과 향연에 심 취 하는 개인과 집단은 수명이 결코 길지 않다. 황금신을 버리고 모세 계통의 교회로 돌아서야 한다 터가 무너지기 전에…

대림 다문화 선교 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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